2002-05-15
서울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2002가 열리기 일주일 전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에서는 자그마한 상영회와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애니메이션이라면 매니아, 꾼 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작가들, 몇 몇 해외인사까지 참가한 들뜬 분위기의 이 파티는 다름 아닌 ‘인디아니마’의 출범식이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든든한 활동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발족한 ‘인디아니마’는 이제껏 정보의 부족, 상영공간의 부족이라는 조건에서 각개격파로 험난 세상을 헤쳐온 애니메이션 작가들 및 감독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을 약속하며 많은 기대와 격려 속에 그 닻을 올리게 된 것이다.
때맞춰 개막된 서울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2002 행사에서는 이 ‘인디아니마’ 소속 작가들의 작품들이 초청 상영되었으며, 자그레브에 본선 진출하게 된 이우진 작가의 'Now, Who rules you?'와 임아론 작가의 '엔젤' 을 비롯한 많은 단편들이 일반인들에게 선보였다.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열기가 한창 무르익은 토요일 저녁 인디아니마의 작가들 중 대표를 맡고 있는 김준기 작가, 'Now, Who rules you?'의 이우진 작가, 'Mouse without tail'의 박원철 작가와 자리를 함께 했다.
당일 상영된 영화를 쭉 지켜보며 유럽 단편 영화들에 대한 자극과 소감들을 나누는 이들에게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늘 배우려는 자세들이 묻어나왔다.
애니메이션이 순수하고 그러한 것처럼 앳되고 때묻지 않은 인디아니마 작가들, 그들만의 세상을 만나본 자리…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까페에서 비싼걸 시키겠다고 기자에게 으름장을 놓더니 콜라와 스프라이트를 시키는 작가들과 한바탕 즐거운 수다를 나누었다.
취재 : 이진실 기자 (whiskybar@yoondesign.co.kr)
정글 : 오늘 영화들은 어떠셨어요?
김준기 :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쭉 봤는데, 유럽쪽 단편들은 정말 기법이나 아이디어면에서 놀라운 게 많아요. ‘소녀와 바다’라는 작품도 정말 놀라웠는데, 쉐이딩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겠더군요. 아이디어도, 화풍도 정말 신선하구요. 스토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재미없을지 모르는 것들도 있지만 훌륭한 작품들이었요. 우리 나라 작품들이 스토리는 더 재미있는 것도 같아요.
<엔젤>
같은 임아론 작가의 작품은 유럽 작품들에 떨어지지 않는 거 같고 박원철 작가의
<마우스>
도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하더라구요.
마우스>
엔젤>
정글 :
<마우스>
(Mouse without tail) 는 정말 사람들이 좋아해요. 아이디어가 기막혀요. 컴퓨터 마우스안에..쥐가 볼을 굴리고 있다니..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은 건가요?
마우스>
박원철 : 졸업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 정말 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문득 컴퓨터 마우스를 보는데, 저 속에 진짜 마우스가 열심히 볼을 굴리고 있으면 재미있겠다 생각을 했죠. 그 뒤론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계속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화장실 센서까지 갔죠..그런데, 여자들은 화장실 센서가 나오는 장면을 금방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남자들은 금방 눈치채고 그때부터 웃기 시작하는데…하기야, 여자들이 남자화장실을 못 가니까..그런데, 여자화장실에는 센서가 없나요? (모두 웃음)
기자는 이순간 박원철 작가에게 여자화장실에는 센서가 어떻게 장착되어있는지 그림으로 설명해주어야 했다. -_-;;
정글 :
<마우스>
가 아주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인데, 자세히 보면 내용이 슬퍼요. 불쌍한 우리의 현실 같기도 하고…
마우스>
박원철 : 블랙코미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편하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얻고 싶은 쥐의 삶은 실제 현실의 많은 사람들의 삶과 다를바가 없죠, 그런 아쉽고 씁쓸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쥐에겐 미안하지만 더욱 철저히 불쌍하게 만들었죠..
김준기 :
<마우스>
에서 삼양라면 봉지 나오니까 아이들이 소리지르고 무척 좋아했어요.
정글 : 정말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게 나오니, 재밌더군요. 삼양 라면 봉지, 부탄가스, 깡소주…
마우스>
이 때 우리는 삼양 라면이 왜 지금은 맛없게 느껴지는가에 대해 잠시 삼천포를 다녀오기도 했다.
정글 : 인디아니마가 출범했는데, 어떤 의미와 포부를 가지고들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김준기 : 인디아니마의 출범은 외형적으로 보여지기에는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들에 대한 든든한 지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특별상영의 기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제공할 수 있어진 겁니다. 작가들이 계속 단편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거죠.
아직 제작비를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모임, 공영기기, 창제실, 스크린 지원등이 그 시작이죠. 이런 지원이 뒤따르자면 작가들이 작품 퀄리티를 높여줘야 하니까 더더욱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게 되겠죠.
그래서, 우선은 인디아니마 회원들의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이 가장 큰 바램입니다. 좋은 작품이 나온다면 그 외의 바라는 점들은 자연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성과가 장편애니메이션 제작까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우진 : 인디아니마의 창단멤버로서 그 출범은 저로 하여금 단편애니메이션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맘을 다잡게 해준 계기이자 동기 그 자체입니다.
특별한 기대나 도움을 바란다기보다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작품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현실만으로도 만족하고, 이런 공감이 작가 사이에서 만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모임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원철 : 인디아니마의 존재는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작업에 든든한 빽 입니다. 소속작가 모두를 만나고 이야기 하는 것 만으로도 작업에 대한 열정이 생기게 되고,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죠. 아마, 인디아니마가 없다면 제가 단편 작업을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을 겁니다.
정글 : 그러고 보면 단편 애니메이션은 장편 애니메이션의 기반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단편 애니가 하나의 장르로서 가지는 매력도 장난 아니죠.. 보는 매력도 있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 단편 애니의 매력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박원철 : 단편 애니의 매력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많은 생각들을 자유롭게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해도 망하는 일은 없으니까. (모두 웃음)
훗날 멋진 대작을 만들기 전에 내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자금도 없고, 기반도 없는 개인이 스스로 맘에 드는 작품을 만들어 냈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이우진 : 제게 있어서 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창작물은 그것을 보는 사람과의 대화입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은 그런 의미에서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도구이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거든요..
김준기 : 짧은 시간에 이런 단편들을 접하면 여러 작가들의 생각을 읽게 됩니다. 군더더기 없는 전달… 제게 단편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군더더기 없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남들에게 전해 줄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작가 개인의 색깔을 친밀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단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소설이나 극화나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군요.
정글 : 김준기 님의
<등대지기>
는 따뜻함을 전달하더군요. 관객들에게 주고싶은 메시지는 뭐라고 하실 수 있나요?
등대지기>
김준기 :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잖아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늘 지나다니는 골목 골목이 깨끗해지는 걸 저희는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TV의 한 코너에서 한 골목을 몇 년 째 새벽에 청소하시는 분이 생활 보호 대상자이신 정신지체 2급 아주머니라는 사연을 보고 이 작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글 : 작품의 배경이나 분위기는 유럽 풍 이던데..
김준기 : 내용 구상 후에 디자인을 한국의 고유 복장이나 배경으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등대나 가로등이라는 소재가 너무나 어울리지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어서 작업실에 구입해 놓은 유럽 박물관을 소개한 23권짜리 일본 백과사전을 참고해서 디자인하게 되었습니다.
정글 : 이우진 님의'Now, Who rules you?' 는 자그레브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되셨죠? 축하 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이우진 : 무엇보다도 얼떨결에 만든 처녀작이 이런 어마어마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본선에 진출한 것은 운이 좋았지요.덕분에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이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언제나 가슴 한 켠에 품었던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해소 시켜 주었던 제겐 일생일대의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답니다. 무엇보다도 너무너무 기뻤었다는 건 물론이지요.
김준기 : 구 소련 국기가 맥도널드 마크와 같은 빨강과 노랑이라는 걸 포착해 낸 아이디어가 일품이죠.
그걸 캐치해낸 게 대단해…
정글 : 맞아요. 정말 그 깃발이 내려지고 맥도널드 깃발이 올라가는 전환이 기막혔어요.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의 몰락과 다국적기업의 지배라고도 해석이 되던데..
아주 날카로운 풍자였어요.
이념으로부터 지배 받는가 아니면 그 무엇으로부터 지배 받는가가 주 메시지 인가요?
이우진 : "나는 지금 진정 자유로운가?" 라는 자문에서 시작되었지요. 인간이 가진 속성 중, 교묘히 위장되고 감춰지고 있긴 하지만 그 대상이 이념이든 물질이든 종교이든 철학이든....
언제나 무언가에게 속박당하고 종속 되고자 하는 인간의 아이러니한 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던 겁니다.
정글 : 단편 애니를 만드시는 분들이니까, 남다르게 보신 영화들도 많을 거 같아요. 가장 영향을 받았거나 감동 받은 작품들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세요.
박원철 : 저는 영국 아드만 사의
<웰리스 & 그로밋>
이에요.
지금처럼 애니메이션이 많이 대중화 되기 몇 년 전 나로 하여금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겠다는 강한 의지를 만들어 준 작품입니다. 달이 치즈로 만들어졌다는 기막힌 상상과 그 상상을 표현하는 작은 셋트와 소품, 그리고 점토 캐릭터들의 움직임... 너무 감동적 이었죠..
<마우스>
의 주인공이 그로밋을 닮았다는 이야기도 하시는데, 정말 제가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마우스>
웰리스>
김준기 : 예전에는 재패니메이션에 열광해서 우선은 그 영향을 이제까지 계속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제 초기 작품들은 지금과는 달리 그런 게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죠..
하지만 단편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있는데, 학생 때 수업시간에 봤던
<발란스>
(Balance:오래 전이라 제목이 확실한지는....)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공간 중에 떠있는 바닥에서 6명 정도의 죄수 같은 사람들이 균형을 잡고 서 있는데 갑자기 얻게 된 보물상자를 차지하려고 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때의 충격과 감동을 저도 제 작품으로 남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발란스>
이우진: 전 애니메이션은 아니구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영화 'E.T'는 내 인생을 바꿔버린 내겐 영화 그 이상의 존재죠.
84년, 내가 'E.T' 를 보고 느꼈던 깊은 감동을 내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 이들에게 다시 전해주고 싶다는 꿈을 갖게 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상상력 듬뿍 담긴 모든 작품들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내 유년시절의 꿈의 보고였다고 할 수 있죠.
한달 전, 'E.T' 가 새롭게 재 개봉한 첫날 난 또 극장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답니다.
제게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디렉터가 되어 전세계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겠다는 꿈을 가지게 한 영화죠.
인디아나>
백>
정글 : 새로운 작품들을 또 준비하고 계실 텐데, 올 한해 계획들은 어떠세요
이우진 : 일단 회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회사(http://www.imaginehi.net)에서 준비중인 장편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충실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음 작품에 대한 충분한 사전준비로 더 나은 제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박원철 : 현재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 야죠.. 많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글 : 김준기님은 인디아니마의 대표로서, 한 사람의 감독으로서 올 한해 가진 계획이나 희망이 남다르실 텐데요..
김준기 : 지금 만들고 있는 ‘인생’이라는 작품을 올해 말까지 제작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인디아니마가 점점 알찬 모임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활동하는 것입니다.
정글 :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준기 : 관심을 가지고 보기 위해서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런 수고에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구요.. 계속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에 관심 가져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원철 : 외국의 좋은 작품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기 전까지 조금 너그럽게 국내 작품들을 봐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더라도 등을 돌리기 보다는 많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심으로써 많은 작가들은 노력의 강도를 높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더욱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길...
이우진 : 애니메이션 많이 사랑해주세요 !!! 이왕이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더~
인디아니마 회원들의 작품들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5월12일 서울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2002 폐막식에서는 김준기 작가의
<등대지기>
가 관객상을 차지했다.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든든한 빽이자, 우리에게는 좋은 작품들과 많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할 인디아니마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인디아니마 홈페이지 :
www.indieanima.com
이우진 :
www.neosoldier.com,
www.leewoojin.com
박원철 :
www.anigeni.pe.kr
등대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