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28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 드리게 되었는데요. 2004년 갑신 년 엔 모든 일들에서 소원 성취 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04년 들어 칼럼의 취지나 방향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캐릭터(character)의 어원과 사전적 의미에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근간으로
영화, 드라마 등 대중 매체 곳곳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조명하여,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이미지화 되고 또 대중의 기호에 병합해 포률리즘을 양산하는 과정을
필자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나름대로 풀어 가보려 합니다.
Characterization(캐릭터라이제이션) 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어떤 개체가 소유하고 있는 특성 혹은 특징을 부여하다라는 의미이지요.
캐릭터는 identity(아이덴티티)의 확보와 더불어 Characterization(캐릭터라이제이션)의 일체감 있는 이미지 메이킹 과정이 참 중요합니다.
캐릭터가 발산해 내는 동일하고 반복적이고 특징적인 이미지가 곧 대중이 캐릭터를 인지하는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일텐데요…
흔히 우리는 사람들을 접하면서 개개인 저마다의 이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 성격 더러워 “ “ 예뻐 “ “ 못됬어 “ “ 착해 “ “ 순수해 “ “ 멍청해 “ “ 욕심이 많아 “ 등등
사람들이 뿜어내는 무수한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코드와 일치하는 이미지에
열광하거나 그에 반하는 이미지들에 반감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연예산업의 정점에 서있는 배우나 가수 공연 예술가들은 꾸준히 그들만의 AURA(아우라)를 위해
움직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우라는 곧 그들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가상의 이미지들로 재포장되어 대중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형틀을 세우고 표정을 지어 넣습니다. 또한 그에 걸 맞는 옷도 입혀줘야 하며
그 캐릭터만의 매력을 발산시키기 위한 필수불가결 한 장치들을 도입합니다.
말투. 행동거지. 사고방식 . 배경 스토리 등등…
이렇듯 캐릭터를 메이킹 하는 과정은 어쩌면 조각 보다는 조소의 개념에 근접합니다.
이런 복잡다중 한 요소들로 조소를 하듯 캐릭터 하나를 탄생 시키기 위해
우리는 원화가 이면서 동시에 스타일리스트이며 이미지 메이커가 되기도 합니다.
설명이 이렇게 장황하게 된 데는…
앞으로 본 칼럼을 기획 하면서 연재할 이야기가 바로 캐릭터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대중매체 속에서의 리얼 캐릭터(real character)들에 대한 재 해석과 발견을 도모해 보고자 함입니다.
굳이 의미 부여를 해 본다면, 얼마나 독특하고 예쁘게 그림을 뽑아내느냐의 문제에 앞서…
캐릭터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예비 캐릭터 디자이너 여러분들과 함께
대중 매체 속의 다양한 캐릭터 이미지를 변칙적으로 benchmarking (벤치마킹) 해보는
exercise (연습) 공간으로 본 칼럼을 꾸려 나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해주심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그 첫번째 화두는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 ‘서장금’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드라마 ‘대장금’을 열혈 애청하시는 분들이라면 이영애가 연기하는 ‘서장금’ 캐릭터에 관해,
그 기본적인 정보는 줄줄 꿰고 계실 듯 합니다.
또한, 본 칼럼은 특정 드라마나 배우에 대해 편협한 시선으로 작품과 연기의 질을 격론 하고자 함이 아님을 아울러 밝혀 둡니다. 그러므로 본 칼럼에서 드러나는 필자의 주관적 견해는 어디까지나 작품에 녹아있는 캐릭터의 발견과 이미지 메이킹에 관해서만 다루고자 하는 것이니, 이점 양지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대장금’이 표방하는 전체적인 기조는 관습과 제도에 반기를 든 반 사회적인 인물 ‘서장금’의 파란 만장 했던 인생 역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500년 전에 실존했던 한 여성의 삶이 수많은 시청자들을 TV로 모이게 한 근본적 메타포는 ‘장금’의 비범했던 삶의 궤적과 맞 닿아 있습니다. 천민 신분으로 궁녀로 들어와 관습과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임금의 주치의가 되는 ‘장금’은 분명 시대적 hero(영웅)이 지니는 상징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이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속의 플롯과 네러티브는 상당 부분 픽션이 가미 되었겠지만,
조선시대와 전문직 여성의 성공담이라는 언밸런스한 결합 만으로도 현 시대 우리 정서가
그 상당 부분의 드라마적 픽션에 일말의 의혹과 반감을 갖지 않는 이유도
‘그럴 수 있겠거니’ 하는 관용적인 시선이 저변에 도모되어 있기 때문인건 아닐런지요.
우리가 hero(영웅)에 열광하는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원천적인 힘의 소유자로 그들을 지지하는
희망 섞인 바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의 무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슈퍼맨’의 존재가 현실적으로 실존 불가능 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웅에 대한 ‘슈퍼맨’적 환상은 이미 우리에게 친근한 캐릭터로 자리 잡은 지 오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아이를 구해내는 ‘슈퍼맨’의 초인적인 비행 만큼이나
‘장금’의 행적은 충분히 동 시대를 살았던 범상한 이들 구체적으로 여성 들에게는 도저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해봤을 ‘hero(영웅)’ 적인 궤적이었습니다.
좀 지나친 비유와 오버가 섞여 있을지 모르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슈퍼맨’과 ‘서장금’의 초인적인 영웅상을 단순 비교하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장금’이 캐릭터가 갖는 영웅적 이미지를 미국의 ‘슈퍼맨’처럼 세계적으로 보편 가능한
이미지로 확대해 볼 수는 없는가의 문제입니다.
굳이 고전적인 모습에 국한되어 있는 쪽진 머리의 조선 여인에 이미지를 함몰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장금’이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영웅적 이미지에서 캐릭터 컨텐츠를
발견해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를 비롯한 독자 여러분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판타지적 이미지 발상에
맡겨야 겠고, 이것이 바로 본 칼럼에 호기심을 가질지도 모를 분들과 함께 풀어 보고픈
숙제인 것입니다.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유통되어져서 대중에게 어필하는 그 모든 과정은
1+1=2 식의 도식적인 산수 답안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많은 변수가 있게 마련입니다.
또한 예측 불가능한 코드를 감각적으로 잡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편 가능한 캐릭터 발현에 도전하는 분들이라면 local(지역)적 사고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두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 개개인이 나름대로 구상하시는 캐릭터들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으신지요…
여러분들은 그 캐릭터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 메시지는 곧 그 캐릭터만의 이미지가 될 것이고 그 이미지는 그 캐릭터만의
aura(아우라)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데츠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는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아톰은 사물을 구성하는 가장 최소 단위의 原子(원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철완 아톰’의 기조를 이루는 영웅 판타지는 악의 무리를 쫓고 평화유지를 위한 명목이 서려 있지만 이는 자신들을 패전국으로 몰아간 미국에 대한 자존심 강한 대응의 발로 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나치와 함께 세계를 전쟁 공포로 몰아간 주범인 일본이 평화의 정점에 캐릭터 ‘아톰’을 내세우는 아이러니는 참으로 절묘 합니다.
캐릭터가 갖는 이미지 메이킹의 놀라운 파급력은 사람들의 무의식을 급속도로 파고들며 일본을 전쟁국가의 오명에서 조금은 벗어 나게 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필자는 ‘대장금’을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엄격한 유교 윤리. 그리고 봉건적 세습의 신분제도가 서려 있던 조선시대에서
과연 역사가 증명하는 ‘서장금’의 성공적인 삶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땅에는 그 어느 때 보다 개혁과 이데아적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 이면엔 내 외부적으로 가중되는 사회적 혼란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져 있습니다.
허나,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서장금’이 지니는 캐릭터 이미지가 보편적으로 어필하는 것을 보면,
우리 역사와 사회는 한치도 진 일보 되지 못했거나 혹은 정체 상태를 답보.
그도 아니면 고답적인 상황을 되풀이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해 봅니다.
코미디 극으로 ‘대장금’ 패러디 버전이 등장하고 열혈 애청자인 한 대학생에 의해
‘대장금’이 카툰 패러디로 활용되는 등 ‘대장금’의 탄탄한 원작 네러티브를 근간으로
‘장금’ 캐릭터가 꾸준히 재 해석되는 기분 좋은 움직임들은 그 면면이 아직은 소소롭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컨텐츠로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은 우리에게도 정녕 ‘슈퍼맨’과 ‘철완 아톰’ 처럼
시대적 가치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이미지 발상이 캐릭터 발현으로 이어지는 꿈이 결코
헛된 망상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 시켜 주었음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대장금’과 ‘슈퍼맨’의 한판 대결은 원석을 가공하는 개발자들의 몫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원석을 발견하는 선구안과 옥석으로 이끄는 혜안을 두루 갖추는
끊임 없는 노력이 앞서야 겠지요.
그럼 다음 칼럼을 통해 뵐 때 까지 하시는 일들에 건승하시길 바라겠구요,
다음 캐릭터에게 말을 걸 때 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