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13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만한, 꽤 이름이 알려진 디자이너의 전시회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일관된 작품활동을 해 오던 사람이기에 전시실에 들어 선 순간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여기저기 두리번거려야 했습니다. 기존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난감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구… 그는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에 빠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런 예가 드문 것만은 아닙니다. 극 사실의 일러스트레이션만을 그리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붓 자국 몇 번 휘갈긴 추상작품을 선보이고, 상업적인 중견 카피라이터가 순수 시집을 발간하고,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선이 무너지고… 퓨전 혹은 컨버전스란 이름으로 장르와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들이 많습니다. Design이란 것도 이제 그것만의 영역을 고집하기엔, 너무나 넓어지고, 다양해진 게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Design이라는 경계선(?)을 넘어 순수예술에 가까운 비무장 지대에 도착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지금이야 대부분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Design관련 학과는 미술대학 내에 얹혀(?) 살았던 경우도 그림(순수 미술)과 Design (도안)의 구별이 모호한 경계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나 공예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때론 누가 봐도 개인적인 취향의 작품(혹은 아이디어)마저 Design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경험상 종종 있긴 하지만…. 굳이 구별할 필요성마저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를 주도하고 ‘아름다운 가게’라는 나눔 사업으로 유명한 박순원 인권변호사의 경우를 볼까요? 시민운동가, 자선운동가인 그가 이제, ‘희망 제작소’라는 연구소를 발족 - 인생 최후의 직업으로 ‘사회 디자이너’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합니다. 디자인경영, 정보 디자이너, 생활디자인, 인생디자인… 이처럼 Design이란 개념이 어디든 갖다 붙이면(?) Design 영역이 되는 무소불위(?)의 파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Design이란 말은 더 이상 Design만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우겨볼까 합니다. 제가 만든 것도 Design 작품이 될 수 있다고 – 어찌 보면 순수한 예술 작품의 하나라 할 수도 있다고 - 누구 마음대로? Designer 맘대로. 뾰료롱~ ^ ^;
저의 대단한(?) 졸작들입니다. 어떠신지요?
‘두개의 구멍으로 보이는 공간’ 혹은 ‘두개의 눈처럼 보이는 표정’ – 명료하지는 않지만, 뭔가 말하려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추앙 받는 건 아니지만, 사적인 즐거움과 호기심이 담뿍 담겨있다면, 어때요, 이것도 Design작품이랄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취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비주류 Design’에 가까워진다는 믿음 – 당신은 동의하시나요?
자고로 디자이너란 -비록 깊지는 않더라도- 시시콜콜한 세상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개인적 취향과 영감이 좋은 Design 을 잉태 시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첫사랑과 함께 한 춘천에서의 아슬아슬 로맨스가 감동적인 소설이 되고, New York Manhattan 96th St에서 느꼈던 이국적인 감동이 작품으로 태어납니다. 인도 바라나시의 영감은 또 무엇으로 만들어 질까요?
여러분도 우겨보십시오. 내 마음대로 느끼면서 작업한 기기묘묘하거나 설익은 나의 작품이, 사실은 정말 대단한 Design이라고…
“베어 버리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더라
(若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 : 약장제거무비초 호취간래총시화)”
향기로운 꽃이냐, 쓸모없는 풀이냐 하는 것은 사람(Designer)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옛사람의 말입니다.
누가 봐도 비슷한 작품을 피카소가 만들면 예술이 되고, 동네꼬마가 만들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어찌 본다면 우습지요. 억울하기도 하구…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직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면 문제죠. 음. 핫. 핫. 핫.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