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9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쳐의 음반을 비롯해 다양한 회화, 디자인 아트워크를 선보인 그래픽 디자이너 김대홍. 독립한 지 1년이 되어간다는 그는 최근 옥근남, 남무현 작가와 전시를 끝냈다. 그를 인터뷰하러 가는 날 아침,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쏟아진 눈은 순식간에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였다. 눈 오기 전후의 다른 풍경처럼, 독립한 후, 그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을까.
기사제공│타이포그래피 서울
전시로 바쁘셨을 텐데 최근 근황은 어떠세요?
음악 레이블에서 몇 년 일하다가 그만두고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그동안 작업한 것을 정리도 할 겸 옥근남, 남무현 작가와 함께 전시회를 열었어요. 셋이 작업 색깔이 굉장히 달라서 뭐하나 통과시키기 어려웠지만(웃음), 준비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요. 의뢰하신 분들의 좋은 손이 되어서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니 채우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전시는 22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갈 때쯤에는 끝났겠네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색하는 시간이에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면인가요?
그동안 다이나믹듀오, 슈프림팀, 프라이머리 등이 있는 아메바컬쳐라는 음악 레이블에서 일했는데 힙합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업이 많았어요. 저는 외모는 좀 무섭게 생겼지만 사실 제 안엔 서정적인 감성이 많거든요(웃음). 아메바에서 의뢰할 때도 제 안의 서정성을 보시고 새로운 면모를 풀어낼 수 있겠다 싶어 선택한 것이겠지만 독립을 하면서 그것을 좀 더 많이 풀어내 보고 싶었어요.
평소 작업은 어떻게 영감을 얻으시나요?
그동안 했던 모든 작업이 제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보기도 싫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게 다시 보이는 것도 있고요. 제 생각에 저는 ‘창조적’이다, 라고 할 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인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합하거나 복각해서 제가 생각하는 재미를 더해서 만드는 것엔 능숙하죠. 주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만화책 또는 책을 보기도 하고요. 남의 작품을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 보는 걸 참 좋아해요.
기본적으로 작업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요?
빛나는 재능을 갖고 계신 분들과 자주 작업을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존중이나 경외심을 갖게 돼요. 물론 일을 하다가 정이 떨어지기는 경우도 있지만(웃음). 괜찮게 아웃풋을 뽑을 수 있는 건 주변에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인 것 같아요. 첫 직장의 사장님이 최자와 개코였는데, 그분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혼자 일 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요. 운이 좋았지요.
그는 자신 안에 다양한 내면의 풍경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남성성과 여성성, 투박함과 섬세함, 강함과 여림이 공존해 있다. 늘 보던 풍경에서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듯, 비슷하게 보이는 작업들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은 꺼낸 것보다 꺼내지 않은 것이 더 많기에 그가 어떤 새로운 풍경으로 안내할지 기다리게 된다.
작업할 때 정서적으로 기복이 있으신 편인가요?
기복이 있어요. 처음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서 열정으로 밀고 나갔는데, 시간이 지나고 소진이 많이 되니까, 제 안의 그릇을 채우지 못하면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제일 속상한 것은 정말 하고 싶은 작업을 맡게 되었을 때 핑계를 대는 일이 많아지고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이걸 내가 한 건가? 자괴감도 들고요. 그러고 나면 다음 일을 할 때도 영향을 미치고. 다시 올라오기가 어렵더라고요.
슬럼프가 왔을 땐 어떻게 극복하세요?
제가 버는 수익 중에서 의식주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홍대 앞 만화책 총판에 가서 책을 엄청 사요. 자극을 받기 위해서도 있지만 멋진 작가들의 세계를 구경하고 싶기도 하거든요.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요. 어렸을 때부터 김진태 씨 정말 좋아했거든요. 개그코드가 저랑 잘 맞아요. 그분 작품은 전부 다 갖고 있어요. 만화는 다양하게 읽고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많이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잖아요. 배척하기보다 수용할 것이 더 많죠.
소속되어 있을 때와 독립한 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소속되어 일할 때는 제가 술과 담배를 하지도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책 읽고 그러니까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어울리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무섭게 생긴 애가 다정하게 하니까 형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독립한 지 이제 1년 정도 되어 가는데 자영업자가 되니 모든 일이 감사해요. 한 군데에서 한 가수의 앨범을 서너 장씩 할 땐 매너리즘도 생기고 이분들한테도 폐가 되지 않나 부끄러워지고 고민이 많았는데 나오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작업 중 뮤지션과 의견이 다를 땐 어떻게 하시나요?
모든 작업마다 아티스트를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뮤지션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은데 생각의 방향이 다르기도 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선호가 다르기도 해요. 좋다 나쁨을 떠나서 의견이 다를 땐 좋은 방향이 어떤 쪽인지를 생각하죠. 도대체 왜 이런 소리를 하지? 이해가 안 되고 영 아니다 싶을 땐 내면의 분노를 보이면서…(웃음). 그럴 땐 제 용모가 많이 도움 돼요(웃음).
그는 스스로 빛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빛나게 하는 일을 한다. 본질을 훼손하거나 왜곡되지 않게 타인을 돋보이게 하지만 충족이 되지 않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도 분명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전면에 나서는 프런트맨이 되기보다 자신의 작업물이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누가 한지 몰라도 자신의 작업물이 생활 곳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진심으로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앨범 재킷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일러스트로 시작했는데 제가 작가가 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 일러스트가 어느 작업의 소스로 들어가면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데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했을 때 일러스트 작가로 제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기엔 한계를 느낀 거죠. 아티클한 작업들을 기반으로 해서 그 요소를 잘 담아내는 것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지금까지 장르적인 음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트 디렉팅이 많이 들어가는 그룹도 해보고 싶고요, 어릴 적에 즐겨들었던 뮤지션들의 앨범도 해보고 싶어요. 한군데 국한하지 않고 이것저것 재미있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다양한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앨범 재킷 이외의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갤러리나 한정된 공간에서 전시하는 것보다 잡지나 광고에서, 혹은 저희 어머니가 마트에 가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음반을 하게 된 계기도 일단 처음 일한 회사가 음반회사이기도 했지만, 여기저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었고요. 지금까진 1인 스튜디오로 활동했어요. 어느 부분은 만족할 때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어느 부분은 놓치는 부분도 많더라고요. 마침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서 새로 스튜디오를 알아보는 중이에요.
젊은 분들이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지 막연한데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음반이든 다른 일이든 졸업하는 분들은 많은데 기존에 일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자리를 잡고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렵죠. 상상마당에서 그래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때 이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거다! 라는 한 가지 길이 있는 게 아니지만, 자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각오가 필요하다고 봐요. 노량진에서 고시공부를 하는 분들도 24시간 자신의 공부로 생각이 꽉 차 있는데, 자신은 과연 얼마큼 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봐야 하고요. 자신의 재능으로 생활하고 싶다면 태도가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