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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뼛속까지 디자이너, 디자이너 김보휘

타이포그래피 서울 (글: 인현진) | 2015-04-06


김보휘 디자이너는 오랫동안 영상작업을 해왔다. 그래서 미디어아티스트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루에 하나씩 작업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고 싶어서 무작정 시작했지만 부족한 것이 많아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그의 웃는 얼굴이 순하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부족함이 많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적어도 그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만큼, 참 부지런한 디자이너다.

기사제공 ㅣ 타이포그래피 서울 (글: 인현진)
 

TS서포터즈들이 '더티&강쇼' 시즌2에서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고 많이 추천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나를…?(웃음) 클라이언트 잡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주로 개인 작업을 위주로 하고 있어서 저한테도 미스터리네요. 영상을 전공해서 디자인 작업보다는 대학 때부터 영상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디자인에 관심이가고 디자인 관련 책을 보면서 공부했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는 게 특이해 보였나 봐요.

영상을 전공해서 디자인으로의 접근 방법이 다를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있죠. 영상은 프레임 하나하나를 만들잖아요. 그 프레임들이 모여서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죠. 한 부분을 세심하게 보기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많이 생각해요. 처음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해오면서 디자인을 하는 태도나 방향이 많이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러스트, 포스터, 앨범커버 등 다방면의 작업을 해오셨는데, 특히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인상 깊게 봤어요. 문구도 재미있고 색감이 참 좋더라고요.
색감은 영상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모션 그래픽이 화려한 게 많아서, 그런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취향의 이유일 수도 있고요. 문구 같은 경우는 하루에 하나씩 만들다 보니까 며칠씩 고민하기보다 그날, 떠오른 걸로 즉흥적으로 하는 편이고요. 스케치하면서 오늘은 너 정신 좀 차려라, 두려움 따위 개나 줘버려, 다 저한테 하는 소리죠(웃음). 예전엔 작업을 하나씩 했어요. 연습생의 마음으로, 내가 부족한 것을 메우려면 하루에 하나씩 작업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을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나더라고요.

삶은 신비롭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엉뚱한 길을 걷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가 대학에선 영상을 전공하고, 지금은 디자이너가 되어 있다. 가슴이 열려 있기 때문일까. 호기심이 살아 있기 때문일까. 그의 눈동자는 꿈을 가진 사람의 눈빛을 담고 있다.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살아온 그는 수평적인 관점을 가지고 스스로 나침반이 되어 인생 지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최근에 한 작업인데, 세종학당이라고 외국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당이 있어요. 그 학생들이 한국에 왔는데 그분들 이름을 한글로 디자인해서 티셔츠로 만들어 선물했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혼자 작업을 해도 어디에 쓴 게 없었는데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게 좋았어요.

혼자 계속 작업을 하다가 디자인을 통해 소통했던, 좋은 기억이네요.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디자인을 하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학생일 때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계속 커져만 가는데 어디에서도 배울 데가 없으니까 무작정 교수님 찾아가서 디자인 과제를 좀 내달라고도 하고. 디자이너도 찾아가고.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도 찾아가 보고. 저를 더 신기하게 보더라고요(웃음). 그래도 한번 해보니까 계속 용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작품도 나오고, 예상치 못했던 일도 생길 것 같은데요.
창작하는 분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아직은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 것도 없어요. 처음에 만든 걸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도 많은데 그래도 내가 지금은 이 정도까지는 왔구나 싶기도 하고요. 언젠가 봉준호 감독님이 자기 작품엔 '삑사리의 미학이 있다.'라고 하신 적이 있어서 아!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 싶어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어긋남을 주곤 하는데 사람들이 바보인 줄 알더라고요(웃음). 맞춤법도 틀리느냐, 일부러 알려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러다 친해지기도 하고.

하나의 결과물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생각과 시선이 생기는 게 재미있네요.
저도 실험을 해보는 건데 제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건 사람들이 관심이 없고, 이건 좀 아닌데 하는 건 오히려 좋아해 주시고. 성향에 휩쓸려 맞춰서 작업하진 않지만 가끔은 고민하게 돼요.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는데 이걸 왜 다들 좋아하지? 하는 것도 있고요. 아직 답은 못 찾았어요.  

그는 이제 곧 삼십 대를 앞두고 있다. 시기적으로 인생에서 창조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큰 흐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일상이 작업과 연결되고, 동시대 젊은이의 감정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나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감각. 창작자로서 그가 지니고 있는 강점이다. 죽을 때까지 디자인하고 싶다는 그.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파죽지세.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대나무의 기세처럼, 창공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가길 기대한다.

작업 외에 좋아하는 취미가 있으세요?
친구들이 봤을 땐 제 취미가 디자인 같대요. 주말에도 카페에서 계속 디자인 작업을 했었으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웃음). 인문계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영상을 공부하려니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왜 있지?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군대 가서 그림을 잘 그리거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도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데이비드 카슨의 강연 영상을 봤는데 그때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꾸준히 스케치 연습도 하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계속 힘을 내면서 작업해올 수 있는 원동력은 어떤 건가요?
대학 은사님께서는 제가 영상을 계속 했으면 하셨는데, 제가 계속 디자인 쪽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포기하셨는지 자신의 스승님이 졸업할 때 해주신 말씀이라고 들려주시더라고요. 너희가 앞으로 뭘 하든 상관없다. 디자인을 공부한 이상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뼛속까지 디자이너다. 그 말이 동기부여가 됐어요.

뼛속까지 디자이너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네요.
저도 정말 감동받았어요. 생각해보면 내가 왜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가 신기하기도 하고요. 은근히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교수님 방에 갔는데 디자인 작업이 여기저기 있더라고요. 다른 것보다 그게 먼저 눈에 띄었어요. 계속 작업해 오시는 게 놀랍기도 했고요.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배울 것이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다른 디자이너들과 같이 한글 박물관에서 11월 말에 전시가 있어서 준비하고 있어요. 또, 360사운드의 SOMDEF의 LP 커버도 작업 중이에요. 더 열심히 작업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고요. 지금까지처럼 나름의 실험을 계속 이어 가려고 합니다. 작업할 때만큼은 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제약을 두기보다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을 하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만큼은 쭉 철이 없고 싶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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