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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사람들은 자기 아이디어가 아니면 반대한다

2006-10-18

광고주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돌아온 카피라이터가 들어오자마자 제작시안이 들어있는 가방을 휙~집어 던지며 씩씩거립니다. 이유는 대충 정해져 있지요. “오늘도 못 팔았다. 광고주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답답하다. 방향은 못 정하고 아이디어만 탓한다. 나를 너무 무시한다. 말도 되지 않는 아이디어를 자기가 낸다…” 등등.

제가 위로한답시고 한 마디 건넵니다. “우리 일이 원래 그래. 월급이 적건 많건 간에, 창피 당하는 값을 받는 거야”

그렇습니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는 빌게이츠의 말처럼 광고주와 광고회사가 서로를 너무 존중하는 나머지, 만나면 예쁜 말만 하고, 죽을 죄를 져도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면서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도 문제지요. 누구나 광고 일을 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몇 해 전, 마카오에서 있었던 어느 회의에서 저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연사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절대로 뒤 돌아 보지 마세요. 앞만 보고 나가세요.(Don’t look back. Look forward.)”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말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왕년에 잘 나가지 못했던 사람은 광고계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오늘도 왕년입니다. 그러니 5분전의 일은 빨리 편집해버리는 것이 몸에 좋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래서 좀 창피해도 아이디어를 계속 내야 합니다. 사실 내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나를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데 내가 먼저 얘기해서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면 반대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반스 월리스)”고 하거든요.

내부 고객이건 외부 고객이건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 아이디어를 냅시다. 싫다면 다시 하지요. 그래도 싫다면 또 다시 하지요. 순간의 창피함이 영원한 행복이 됩니다. 정상수 상무이사 (오길비 앤 매더)


광고1) 화초용 비료
화면 전체가 푸른 숲으로 뒤덮여 있는데, 저 멀리 에펠 탑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곳은 프랑스 파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파리는 이렇지 않은데. 아하, 비료 광고군요.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한 번 뿌렸더니 나무가 파리 시내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는 이야기. 이어지는 카피 한 줄. “콤포 비료. 화초를 무성하게 키워 드립니다”


광고2) 장난감 자동차
자동차 앞 유리창에 부딪쳐 처참하게 죽은 것은 파리입니다. 그런데 파리가 그렇게 큰 까닭은? 파리가 갑자기 커질 리가 없으므로 자동차가 작을 수도 있겠군요. 오슬로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미니카가 작다는 이야기를 뒤집어서 표현하여 재미를 주었습니다. 저도 절대 “배가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슴이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광고3) 섬유 유연제
마치 선인장처럼 보이는 이 비주얼은 클로즈업으로 본 털 스웨터의 일부분입니다. 아래에는 화살표와 함께 작은 글씨로 캡션을 붙여 놓았습니다. “이 부분은 당신의 목을 따갑게 하는 까칠까칠한 옷의 1cm입니다” 섬유 유연제를 위한 광고. 겨울에 털실로 된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더운 실내에 들어가면 갑자기 목에 땀도 나고 정말 간지럽지요. 이런 옷을 별로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은 태국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공감 가는 순간을 잘 포착했습니다.


광고4) 두통약
눈이 너무 피곤해서 도무지 오래 볼 수가 없는 광고. 2초 이상 보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래서 피하듯이 아래로 눈길을 돌리면 두통약 광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쇄광고의 기대수명이 2초 정도라고 하는데 이건 1초도 못 보겠군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인도에서 만든 병 주고 약 주는 아이디어.


광고5) 특급 배송
가로수의 이파리가 너무도 무성하여 도로 표지판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배송 회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눈감고 다녀도 다 알거든요. 카피도 “우릴 막을 자 없다. DHL-멕시코에서 25년 배송” 한 눈 팔지 않고 어떤 일을 25년쯤 하면 고수가 됩니다. 생선회를 25년간 뜨면 눈 감고도 회를 종잇장처럼 뜨고, 불 끄고도 떡을 고르게 썰고, 미세한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인지 알고. 그런데 광고 일은 어떻게 된 건가요, 신참 때보다 아이디어 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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