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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외계인? 한국에서 길들여봐!’

2005-11-02


‘명탐정, 코난(名探偵コナン,Detective Conan,1996작)’, ‘고쿠센(ごくせん,2003작)’, ‘에어마스터(Air Master,2004작)’ 에 이어, 최근 ‘개구리 중사, 케로로 (ケロロ軍曹,2004작)’를 한창 길들이고 있는 투니버스의 석종서PD를 만났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광고대행사 취업을 준비하며 ‘KBS 방송아카데미’에서 연출 전공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있었다.
‘온미디어’(투니버스 및 11개의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있음)의 입사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시험을 본 뒤 입사하게 되어, ‘온미디어’ 계열사 중 하나인 ‘투니팝’에서 먼저 2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터넷 방송과 라디오 프로그램 PD일을, 입사 3년차인 2003년 애니메이션 더빙PD로서 투니버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1. 작품의 계약 (제1단계, 작품을 해석하고 준비하는 기간)
계약에서 마스터테이프를 받기까지 대략 2-3달이 걸린다.
본격적인 작업이 들어가기 전인 이 기간 동안, 만화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충분히 보고, 연구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일본풍이 짙은 대사나 장면은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바꾸거나 잘라낼 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데 케로로의 경우에 모자에 붙어있는 별은 인민군, 모자의 형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모자를 연상시킬 수 있어 많은 우려를 했었다.
또한 케로로는 패러디가 많은 작품이다. 각각의 패러디는 슬램덩크, 건담, 에반겔리온, 카레이도스타, 유리가면, 후뢰시맨(전대물), 소년탐정 김전일, 허리케인 죠, 플란다스의 개, 마징가Z, 소림축구(영화) 등등 화려하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들을 한국의 시청자들이 알아챌 수 없으면 재미도 느낄 수 없다. 따라서 세심한 번역과 연출이 필요하다.
케로로는 총 51편 중에서 48편이 방영되고 있으며, 일본색이나 방영에 기타 무리가 있는 부분이 제외되는 것이다.

http://www.tv-tokyo.co.jp/anime/keroro/main_index.html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일본공식 홈페이지


2. 원본 마스터테이프 확보 (제2단계,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원본 마스터 테이프를 받으면, 번역작업을 준비한다. VHS 테이프로 만들어, 대본집과 함께 번역작가에 넘기게 된다.

3. 번역작업 (제3단계, 로컬라이징을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작업하기 편리한 VHS 테이프로 작품을 보며 번역한다. 번역작업 중에는 수시로 PD와 작가와 연락하며 스토리를 파악하고 캐릭터를 해석한다.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는 주로 메일을 통해 이루어 지며, 전화나 직접 만나 해결하기도 한다.

4. 성우의 선정과 캐스팅 (제4단계, 드디어 목소리로 살아난다)
드디어 성우를 선정하고 캐스팅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Daum’의 캐스팅 뱅크(http://cafe.daum.net/CastingBank)카페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400-500명의 성우들의 활동에 대한 팬들의 글을 볼 수 있는데. 요즈음 스타급 성우들의 부상이 눈에 띈다. ‘더빙쇼’나 ‘팬미팅’ 등으로 팬들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5. 녹음(더빙) (제5단계, 성우+번역작가+엔지니어+PD의 4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케로로의 경우, 온 미디어의 녹음실에서 매주 월요일, 4편을 작업한다.

6. 믹싱 (제6단계, 녹음작업 완성하기)
성우들과 더빙을 마치고 난 다음에 오디오의 전체적인 발란스를 맞추는 후반작업으로 다음과 같은 작업을 말한다.
- 대사, BGM, 효과음 등 애니메이션 나오는 모든 오디오의 전체적인 발란스를 조정.
-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성우가 연기한 대사부분의 립싱크 조정.(대부분 성우들이 더빙 전에 시사를 하면서 립싱크를 맞춰 준비해 오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엔지니어가 조정한다)
- 대사들 중에는 기계음과 같이 필터가 걸린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프로툴’과 같은 오디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조정한다.

7. 종합편집 (제7단계, 마스터테이프의 완성)
종합 편집이란 방송용 마스터 테이프를 만드는 작업으로, 작품의 주제곡(오프닝/엔딩)과 본 편, 그리고 다음편 예고를 하나의 테이프에 묶어서 붙이는 작업을 말한다. 그리고,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 같은 것을 넣는 작업도 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방송용 마스터 테이프가 만들어지게 된다. (녹음과정에서 마스터테이프까지 보통 2주가 걸린다)

케로로 작품의 경우, 다른 작품에 비해 어려운 점은 화면에 있는 많은 일본어들을 편집하는 것이다. ‘넌리니어’라는 ‘비선형편집작업’은 화면에 남겨져 있는 일본어를 없애거나 한글로 바꾸는 작업으로, 베타테잎으로 넘겨진 화면을 작업하여 완성된 필름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 부분을 맡는 편집실에 넘기면 방송송출 전까지 마감하여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케로로의 경우에는 총 30분 방영시간에 반 정도는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반 이상) 마감 몇 시간 전에야 넌리니어가 완성되어 송출실로 들고 뛰어갔던 에피소드도 있다.

8. 방영과 홍보 (제8단계, 시청자들이 보고 즐긴다)
송출실에서 방영된다. 앞에서 보듯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작업이 끝나며, 방영 뒤, 비디오나 DVD등의 제작, 판매작업등은 회사 내 다른 부서인 ‘사업팀’이나 ‘판권팀’이 맡아 하게 된다.

http://www.ontooniverse.com/keroro/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한국공식 홈페이지

원작이 만화책일 경우,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에서 목소리의 선정은,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를 연구한 일본의 연출자가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성우를 캐스팅하고 녹음하며 만들어진다. 고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목소리는, 일본식 연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제작된 일본작품을, 한국에서 방영하게 되는 경우 더빙작업은 로컬라이징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한국어에 어울리며 시청자들에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목소리로 재창조되는 것을 말한다.

로컬라이징이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을 시청할 타깃층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나라 식으로 길들이는(?)작업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판권을 ‘한국화’ 하는 것으로, 작품이 제작된 국가의 해당언어로 된 캐릭터의 이름들, 간판이름과 주제곡의 가사 등 작품 속의 다양하고 많은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 작업은 번역작가와 연출자(PD)가 주로 담당하게되는데, 일본풍을 로컬라이징 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로컬라이징이 힘든 부분들은 어쩔수 없이 삭제(Drop)하는 경우도 있다.

‘개구리중사, 케로로’의 경우에는, 계절을 모티브로 한 등장 인물들의 일본식 이름들이 우주를 모티브로 한 한국식 이름들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들의 이름은 아주 중요하다. 내용의 전개가 이름을 모티브로 하여 진행되거나, 이름을 변형해서 유머를 전하는 부분이 흔하게 생기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극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경우가 있어, 이름으로 재미를 주며 일본식 말장난 유머를 살리는 것이 내용상 빠질 수 없는 재미이지도 하다.

‘명탐정 코난’은 로컬라이징 작업이 상당히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암호문들이 대부분 일본어를 모티브로 하고, 풀어낼 수 있는 힌트들도 모두 일본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암호를 자연스럽게 푸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삭제(Drop) 시켜야 했다. 더빙을 못하고 넘어가는 장면들은 너무 아쉬웠지만 번역작가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해결한 장면들에서 보람을 느꼈다. 특히 요즈음의 네티즌들은 일본어판과 한국판을 비교하여 보는 마니아들도 많은데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여러가지 글들(예를 들면,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으로 번역할 수 있었을까’ 등등)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게 된다.

애니메이션의 주제곡 등 음악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원곡의 70%는 그대로, 나머지 30%는 다시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작업에서도 로컬라이징이 필요하며 오프닝 화면의 이미지들에 맞추어 곡 자체에서 끊는 부분, 튕기는 부분.. 등 강조되어야 할 사항들이 자료 화면과 함께 작곡자에게 넘겨지고 함께 작업이 진행된다.

더빙은 연출자뿐 아니라 성우들과 피드백을 주고 받는 작업이다. 따라서 한국어 녹음에는 한국어에 맞게 새롭게 창조되는 부분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빙작업의 재미와 매력이 있다.
더빙은 담당PD, 성우, 번역작가, 엔지니어의 4박자가 잘 맞을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 특히 담당PD와 성우와의 피드백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만들어낼 때 PD의 연출력과 의견, 그리고 이에 대한 성우의 이해, 소화력과 성우 자신의 의견이 더해지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고쿠센, 긴 호흡의 거침없는 대사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중에서 ‘고쿠센’이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화원작의 애니메이션으로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고쿠센’은 ‘조폭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조폭에 관련된 내용으로 여자주인공이 조폭집안의 딸로 나오며, 거침없는 대사들로 상당히 욕이 많았다.

‘고쿠센’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포켓몬’의 대사는 호흡이 짧고 단순한데, 짧은 호흡은 성우가 연기를 하기에 재미도, 감정이입과도 조금 거리가 있다. 하지만 ‘고쿠센’의 경우에는 새침한 여자 선생님이 불량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하나씩 들키는 과정이라서, 현실적인 대사와 거침없는 욕으로 호흡이 긴 대사가 많았다.
이 작품을 하면서 성우들의 감정이입이나 대사의 전달 등 더빙작업이 아주 인상깊었으며, 성우들이 각각의 캐릭터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에어마스타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게다가 변태적인 작품으로, 아주 특별한 주인공 여자캐릭터가 스트리트파이터들의 세계로 빠져들어 그 세계를 평정하게 된다는 황당하지만 그래서 더욱 더 재미난 이야기이다.
오프닝 곡은 ‘센’ 내용에 어룰리는 락Rock 이었는데, 처음 원곡을 듣다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따라 흥얼거리게 되었다. 대학 때 그룹사운드의 보컬을 했었기 때문에, ‘지르는’ 느낌인 주제곡에 마음이 끌려서, 집에서도 계속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일요일. 무작정 엔지니어와 단둘이 녹음실에서 녹음을 했다. 그렇게 부른 곡이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에어마스타’의 오프닝 곡으로 쓰여졌다.
녹음실에서 ‘1분30초’ 곡을 만들기 위해, 2시간 동안 계속 혼신을 다해 소리지르며 녹음하다 보니, 다음날엔 갑자기 담에 걸려 숨도 쉬기 힘들 정도가 되었었다.
케로로도 녹음 작업후에 작곡가와 코러스 작업을 했다.


▶에어마스타, 주제곡을 직접 부르다!

처음, PD일을 할 때보다 점점 시간분배에 능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업무처리속도가 처음보다 빨라져서인지 보통 오후 8시가 되면 퇴근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별로 없다. 주말은 쉬며(주5일 근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밤샘작업이 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3번 정도 밤샘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일이 재미있어서 나름대로 즐겼기때문에 별로 힘든 줄은 전혀 못 느꼈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녹음작업을 하고 싶다. 예전에 투니버스에서는 ‘영혼기병 라젠카’를 제작했지만,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해 잠시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손을 떼고 있는 상태이다. 앞으로 반드시 멋진 시나리오와 기획력, 그리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만들 캐릭터로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싶다.

자신만의 취향으로 애니메이션을 판단하는 마니아 성향은, 애니메이션PD로 맞지 않다고 본다. 객관적이지 못한 판단은 결과적으로 작품의 질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적으로 흐르는 판단보다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객관적인 비평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또, 우리말을 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 외에도 정열적인, 적극적인 자세와 포토샵이나 기타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룰 줄 하는 능력도 갖추면 좋다.
작품에 맞는 자막(내용에 따라 귀엽거나 세련된 폰트의 자막)에서부터 시작하여 작품의 로고, 예고편 등 디자인 적인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직접 제작을 하지 않더라도 높은 안목을 가지면 그만큼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사인물, 간판 등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등에 출장을 갈 때는 한번에 몇 백장씩 찍어오는데 이런 관심은, 감각이나 안목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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