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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의 사춘기를 보듬다.

2007-01-23


복실복실한 꼬리가 5개나 달린 귀여운 소녀를 보았다. 그 소녀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구미호로 인간으로 따지면 사춘기에 해당하는 나이라고 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여우비다. 장편 애니메이션 <천년 여우 여우비> 도 주인공처럼 애니메이션 사춘기 과정을 지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오픈 되기까지의 과정은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참으로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그런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을 이해하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며 시스템을 제대로 굴러가도록 노력했던 아트디렉터 조혜승씨가 있었기에 여우비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성강 감독이 여우비의 부모라면 조혜진씨는 사춘기에 만난 최고의 멘토가 아닐까 싶다. 그런 그녀에게서 여우비의 좌충우돌 애니메이션 제작기를 들어보았다.

취재| 이동숙 기자 ( dslee@jungle.co.kr)

조혜승 : 5개월 정도 먼저 작업을 하신 상태였고 데모필름 진행되는 중간에 연출부 스텝 등 공지를 내셔서 이력서를 내서 면접보고 일반적인 루트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혜승 : 면접을 감독님이랑 피디님이 보셨는데 질문을 다하시고 나서 질문을 받겠다고 하셔서
어느 정도 진행이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상황이냐 라고 했더니 시나리오 다 나왔고 캐릭터도 다 나왔고 제작에 들어가면 된다고 하셔서 아트디렉터를 뽑기엔 너무 늦지 않았는가 했는데 진행은 되었지만 그걸 실제 본 제작에 사용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 후로 1년 이상 기간이 지난 후 본 제작이 들어갔다.

조혜승 : 아트디렉터라고 하면 굉장히 포괄적인 영역을 얘기하는 거라 사실 그전에도 아트디렉터로 일을 해왔지만 아트디렉터란 딱 이거라고 규정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시스템 안에서 적절한 역할을 찾는 것부터가 일의 시작이고 전체적으로 꾸리는 작업을 한다.
여우비는 감독님과 같이 시나리오를 발전 시켜가면서 아주 기본적인 형태부터 잡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작업했던 캐릭터는 지금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미지보드 같은 것들은 지금 적용된 것들이 꽤 있다.
처음에는 캐릭터 이외에 모든 배경에 대해 총괄하기로 하고 스타일을 잡고 일을 시작하다가 캐릭터도 중간에 맡게 되어 모두 진행하게 되었다. 캐릭터를 비롯해 배경, 색채 등 전반적으로 총괄했다.

조혜승 : 캐릭터는 저도 참 안 하려고 했던 프로젝트다. 캐릭터 디자인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감독님께서 직접 하시거나 캐릭터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하면 일에서 발생되는 로스를 줄일 수 있고 감독님께서 직접 하시게 되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는 말 그대로 배우니까 배우의 역할을 디자인하는 사람과 액팅하는 사람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처음에는 캐릭터 코스튬 작업은 가능하겠다 해서 코스튬 쪽 작업을 하다가 계속 캐릭터 디자이너가 많이 돌다 보니깐 캐릭터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여우비는 처음부터 어떤 이미지라는 캐릭터라고 확고하게 정하고 들어가다 보니까 그 것을 뽑아낼 사람이 없어서 캐릭터를 정립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양쪽으로 머리를 묵고 어쩌고 해도 그것을 그림으로 막상 표현한다는 것이 힘들었고 딱 들어맞는 캐릭터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외국으로 가져갈 홍보자료가 없어서 브로슈어를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 당시도 기존의 캐릭터들 중에 쓸만한 것들이 없었기에 새로 그리기로 하고 반나절 만에 아무런 가이드 없이 내 생각에 예쁠 것 같은 이미지를 그려서 드렸었다. 운이 좋겠도 감독님이나 다른 분들의 평이 좋았고 그 뒤로 캐릭터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아트디렉터 일만 해도 부담되는 일인데 캐릭터 디자인까지 맡다 보니까 난항을 거듭했다.
캐릭터는 양이 굉장히 많았다. 중간에 여러 마리 시나리오상 버린 것도 많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캐릭터가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까 그런 감독님의 감성적인 요구나 특성들을 살리면서 대중이 보기에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다듬는 작업이 제일 어려웠다.

가장 맘에 들었던 캐릭터는 여우비가 주인공이고 하니까 애착이 젤 많이 가고 다른 캐릭터 들은 머랄까...... 그림만을 놓고 봤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영화 안에서 전반적인 움직임 등을 놓고 봤을 때는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보이더라. 특히 러닝타임에 비해 캐릭터가 많다 보니 캐릭터 하나하나의 매력을 다 준비해 놓고 보여주지 못해서 여우비 외에 조명된 캐릭터가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말썽요도 애착이 가는데 스토리 안에서도 조연급 중에서도 비중이 높기도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관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보니깐 캐릭터 이입이 잘 안 되는데, 말썽요는 딱하게 보여서 애착이 가기도 하고 이감독님의 작품에서 늘 일관적으로 빠지지 않는 코드인 어리고 못나고 주목 받지 못하는 존재에 보내는 따듯한 시선이 있는 캐릭터라 더욱 그런가 보다.


말썽요를 그릴 때 아이들 사진을 많이 수집했다. 예쁜 아이들이 아닌 사진작가들이 찍은 코흘리개의 못생긴 아이들 사진을 모았다. 그런 아이들이 짓는 표정은 광고모델 아이들이 짓는 표정이 아닌 진실된 표정이었다. 최대한의 감정을 표현해 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말썽요의 모습을 찾았다.


여우비 같은 경우는 동물 사진을 많이 봤다. 북극 여우라고 그 동물 사진을 많이 봤는데, 짐승들의 표정이 사람이랑 달라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감정적인 물음표? 그 퀘스천마크가 매력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조혜승 : 배경에 손으로 그린 듯한 수채와 느낌이 필요한데 그게 연출상 3차원 적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들이 많았던 것이 풀어야 할 큰 숙제 중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3D라고 하면 매끈하고 사실적인 이미지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수채화 같이 손으로 그린 느낌으로 작업을 구현한다는 것이 기존의 작업 방식으로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이미지라는 것이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감독님이 라인을 살리자고 했으니까 라인이 있을 것이고 색이 있을 것이고 빛과 어둠이 있을 거고 질감이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4가지가 다 겹쳐져서 하나의 공간이나 사물로 구성이 되는 건데 그것을 다 따로따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해서 3D슈퍼바이저에게 제안을 했다. 테스트 작업으로 여우비의 방 문짝이라던가, 서랍 등을 그런 식으로 4단계로 나누어서 작업을 해보았다. 3D에서 직접 구현하기 때문에 라인과 그림자는 거기에서 바로 해결이 되고 색과 질감은 따로 해서 작업을 하니 이제껏 고민했던 것들이 가능해졌다. 나중에 슈퍼바이저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작업형태냐고 하시면서 헐리웃에서는 이런 식의 작업을 하는데 아직까지 이런 식의 작업은 해본 적이 없었다면서 먼저 제안해 줘서 좋았다고 말씀하시더라.
2D배경을 그릴 때도 배경을 다 똑같이 그리지는 못하니깐 정보들을 라이브러리화 시켜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나무나 산, 배경이 될 것들을 만들어 놓고 저장시켜놓은 뒤 다른 간단한 배경 등에서 소스로 활용하면서 작업 속도를 빠르게 했다.


조혜승 : 감독님 스타일이 이야기 외의 것들이 부각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소품들은 디자인이 튀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붙고 그러면서도 허술하거나 맹탕 같지 않아야 했다.
여우비의 방에서도 보면 여우비가 사실은 짐승이지만 소녀의 모습과 감성을 지니고 있고 또다 큰 여자이기도 한 복잡한 캐릭터이다 보니 그 방 또한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 짐승 소굴 비슷하지만 여자아이의 내면에 복잡함이 표현된 느낌을 주기 위해 다홍치마로 장막을 친 침대라던가 거울에 브래지어를 걸어놓는다거나 여우면서 여우목도리를 걸어놓는 식으로 그 오묘한 감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또 어릴 때 소꿉놀이 할 때 보면 모래 가지고 밥이라고 하는 등 소품에 의미를 나름 부여하고 쓰는 것들에서 착안하여 요요들이 타고 다니는 욕조같이 생긴 차도 당연히 그 용도가 아니지만 비슷하게 생기면 그렇게 사용했던 어린아이들의 생각에서 나왔다. 그들에게 욕조를 타고 이건 자동차야! 하면 그것은 자동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선의 경우 요요들의 기지와 같이 묶어서 생각하면서 재미있는 요소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러닝타임에 제한 때문에 잘려나가 아쉬웠다.

조혜승 : 시작은 여우비가 처음이었지만 중간에 단편을 도와드리면서 2작품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일단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았다. 감독님이랑 같이 작업하려고 지원했던 이유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많이 가지고 계셨기 때문인데 추진력, 순발력이 국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정도 기간에 완성하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 7년 정도 걸리고 하는 것이 자랑 아닌 자랑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작품이란 것이 아무리 혼신을 힘을 해도 모자란 부분은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것들은 앞으로 다른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우비 같은 경우도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제작적인 면에서 좀 더 나은 작품이 나왔을 수도 있지만 그런 아쉬움은 다음 작품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했기에 어느 순간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혜승 : 서울을 배경으로 하면서 서울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 고민을 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 그때마다 경험한 하늘색은 나라마다 달랐다. 한국에서 보는 하늘색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작업하는 방식을 가져와서 하다 보니깐 하늘은 당연히 새파래야 하고 바다는 코발트 블루여야 한다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건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새파란 하늘이나 바다가 아니어도 가질 수 있는 감성을 표현해내려고 했다.
그런 질문도 받았다. 왜 여우비의 하늘은 파랗지 않냐고. 첫 번째 이유는 파란색을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우비의 마음속 심령인 호수로 들어갈 때 그 세상은 온통 파란색이고 소년이 사랑을 느꼈을 때 나오는 색도 파란색이고 영화 안에서도 파란색이 기억에 남길 바라기 때문에 여러 곳에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의 하늘은 그다지 파랗지 않다는 것이었다. 파랗지는 않지만 밝다는 느낌을 주는 색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었고, 나라가 가진 기후나 환경 등이 만드는 고유의 색을 살리고 싶었다. 서울의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색은 선명하지 않고 하얗게 날라가지만 빛은 굉장히 선명해서 청명하고나 쨍하구나 라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조혜승 : 여우비 안에서 금이의 사랑 내지는 여우비가 원하는 사랑은 강선생이 변신녀를 보고 느끼는 종류의 감성과는 다를 것이다. 소년이 처음 느낀 첫사랑은 평생을 지배하는 사랑으로 성적이거나 현실적인 것이 전혀 이입되지 않은 마음 자체에서 우러난 사랑이다. 그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검정보다 더욱 깊어 보일 수 있는 푸른색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또, 가장 따뜻한 파란색을 보여주려 했다. 남태평양의 파란 바다가 따뜻해 보이는 것처럼 파란색도 따뜻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에 존재한 아련한 따스함을 파란색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붉은 색은 어른들의 사랑이나 일반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했고 푸른색은 일반적인 사랑의 색은 아니기에 관객들도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특별한 감정을 좀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혜승 : 지브리는 이미 문화적인 성을 구축한 집단이기 때문에 조금만 유사해도 닮아 보이기 쉬운 것 같다. 또한 지브리에서는 자기들만의 트레이드 마크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큰 나무만 나와도, 털 달린 커다란 짐승, 날아다니는 성, 마법을 부리는 소년소녀가 나와도 지브리와 연결돼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연관을 시키려면 시킬 수 있지만, 그냥 좀 따로 봐주면 안될 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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