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5
조선시대에는 음양과 오행, 풍수나 유교적인 가치관이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궁궐 답사에서 음양오행과 최소한의 풍수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이해 할 수 있다. 음양론은 우주나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이 낮과 밤 같은 상반된 성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념론이며, 오행론으로 발전해 나갔다. 우주만물의 생성, 변화, 소멸을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으로 대표되는 오행의 변화와 달라짐으로 설명하는데, 가깝게는 조상때부터 써 왔던 우리의 이름 중 세대별 돌림자의 한자 부수 순서가 오행의 상생론에 근거를 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할아버지>아버지>나 이렇게 시대 순서대로 이름의 돌림자를 확인해 보면 부수에서 木火土金水의 순서대로 한자가 들어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기사 제공 | 도서출판 담디(www.damdi.co.kr)
원작 | 최동군의 나도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궁궐편
사진 | Rohspace
음양오행은 동양 고유의 이론
기술과학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음양오행은 한갓 미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음양오행은 동양의 오래된 이론이다.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음양론’은 대체로 음양이 만물을 이루는 본체가 된다고 보았고, 구체적으로는 해와 달을 연구하고 그 상반되는 성질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쉽게 풀이하자면 우주 만물이 해와 달로 대표되는, 상반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그 예로는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빠르고 느린 것, 뜨겁거나 차가운 것, 가볍거나 무거운 것, 크거나 작은 것, 높거나 낮은 것 등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물을 예로 들어 보자. 폭포처럼 쏟아지거나 큰 강물처럼 흐르는 물은 우물같이 고여있는 물과 서로 상반되는 성질이다. 전자가 양이고 후자가 음이다. 움직이는 물은 `내뱉는` 양의 성질을 갖고, 고인 물은 `빨아들이는` 음의 성질을 갖는다.
TV 사극에서 옛 여인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달밤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장면을 간혹 볼 수 있다. 정화수는 달이 뜬 한밤중에, 아무도 손대지 않은 첫 우물물로 음의 기운이 가득한 물이다. 달과 고인물인 정화수가 `빨아들이는` 음의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소원도 더 잘 빨아들인다고 믿었다.
오행은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으로 대표되는 성질로, 나무, 불, 흙, 쇠, 물의 성질과 1:1 함수관계에 있다. 토(흙)는 오행의 순서 중 가운데 있어서 오행의 중심이 되며, 지구나 땅을 뜻한다. 토를 계절로 비유하자면 ‘장하(長夏)’로 해가 잘 비치는 늦여름을 일컫는다. 이 때 모든 곡식이 열매를 맺고 추수를 기다리는 시기로 그 해의 풍년을 좌우한다. 다시 오행의 순서를 계절로 나타내면 목>화>토>금>수는 각각 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 에 해당하며, 방향으로 나타내면 동>남>중앙>서>북 에 해당된다.
오행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동쪽은 나무(목)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봄의 계절로 푸른색,
남쪽은 태양(화)이 이글거리는 여름의 계절로 붉은 색,
중앙은 땅(토)에서 오곡이 추수를 기다리는 늦여름의 계절로 누런 황토색,
서쪽은 찬 쇠붙이(금)의 느낌처럼 서리가 내리는 계절인 가을로 흰색,
북쪽은 깊고 검은 물(수) 속과 같은 추운 겨울로 검은색으로 표현된다.
오행은 우리가 흔히 아는 사신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신도는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상상의 동물그림으로 동쪽에는 청룡(푸른색), 서쪽에는 백호(흰색), 남쪽에는 주작(붉은색), 북쪽에는 현무(검은색)가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천정에는 황룡(가운데, 노란색)이 그려져 있다.
시간적인 개념으로 보면 하루를 이루는`밤과 낮`은 음양의 변화로, 1년을 이루는 `계절`은 오행의 변화로 대변된다. 공간적인 개념으로는 `아래와 위`는 음양으로, `앞, 뒤, 좌, 우, 가운데`는 오행으로 구분된다. 오행의 중심은 땅과 흙의 성질인 토다.
경복궁에 적용된 음양오행
궁궐에도 음양오행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경복궁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의 좌우에는 일화문과 월화문이 짝을 지어 있는데 동쪽은 해가 뜨는 양의 기운이 있기에 일화문이라고 하고, 서쪽은 해가 지는 음의 기운이 있기에 월화문이라고 했다.
또한 근정전의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가 짝을 이룬다. 조선의 양반은 문반(문관)과 무반(무관)을 합쳐 양반이라고 했는데 그 중에서 무반은 적을 죽이는 일을 담당했기에 음의 기운으로 보았고, 문관은 상대적으로 양의 기운으로 보았다. 그래서 융문루가 동쪽, 융무루가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복궁 동쪽의 궐문은 건춘문이고, 서쪽의 궐문은 영추문이다. 오행에서 봄은 동쪽이요, 가을은 서쪽이므로 이름만 들어도 방위를 알 수 있다.
한편, 음양은 상대적인 성질을 구분한 것으로 어느 하나가 좋다기 보다는 서로가 잘 조화되어야 좋은 것이다.
경복궁의 풍수지리
풍수지리는 미신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풍수지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서 모든 건물에 적용했다. 산 사람의 집에 적용하는 풍수를 양택풍수라고 했고, 죽은 사람의 집(무덤)에 적용하는 풍수를 음택풍수라고 했다. 그런데 경복궁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풍수상 좋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풍수상 나쁜 공간을 좋은 공간으로 인위적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것을 풍수에서는 비보(裨補)라고 하는데, 경회루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경복궁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은 풍수상 바위산의 나쁜 기운이 너무 강해 경회루의 연못을 파서 물의 기운으로 나쁜 기운을 막으려고 했다.
또한 경복궁의 동남쪽은 평지로 되어 있어 나쁜 기운이 들어오기 쉽다. 그래서 방풍림처럼 나무를 많이 심어 비보(裨補)하기도 했다. 경복궁의 동남쪽에 있는 지명에 수송동(壽松洞)이나 송현동(松峴洞)처럼 소나무 송자를 쓴 것도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이 실제로 경복궁에 거주한 것이 조선왕조 500년 중 100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것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