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 | 2015-06-19
대전천, 유등천, 갑천, 이 세 하천이 함께 엮어낸 도시 대전에서 하천이 동서방향으로 곧게 흐르는 구간이 딱 한 곳 있다. 그곳에 북쪽으로 면해 592,494㎡(179,229평), 대전 원도심의 40%나 되는 크고 좋은 땅이 있다. 그 땅의 뒤, 곧 북쪽은 ‘우성이산’이다. 그러니 이곳은 여러 건물을 모두 남향으로 배치하고 정확하게 배산임수를 할 수 있는 대전에서 유일한 곳이다. 동서로 긴 남향의 이 땅에서 1993년에 엑스포가 열렸다.
기사제공 | 건축디자인신문 에이앤뉴스
도시 속의 건축
대전엑스포는 이런 광활한 길지에서 열렸으나 거대한 외화내빈의 행사가 끝난 뒤 그곳은 20년 넘게 대전에 커다란 애물단지였다. 그 땅을 새로운 도시로 만드는 일, 이는 대전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도전 가운데 하나였지만 여태껏 신도시의 큰 그림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엑스포 건물들이 철거된 자리에 덩치 큰 건물들이 중구난방으로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결국 그 땅에 지어지는 건물은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골프존 부지는 대전엑스포 부지의 동쪽 가운데쯤, 말굽 모양으로 생긴 땅이다. 너른 땅의 중앙부이지만 폭 20m의 큰 도로가 부지를 뚜렷이 도려내서 주변과 단절되기 쉬운 상태다. 게다가 동서방향 공개공지의 축이 부지를 남북으로 양분해 두 토막으로 나뉘기 십상이다. 이곳에 두 단계로 조성되고 있는 골프존 영역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듯한 여러 동의 건물이 가운데 광장을 동그랗게 감싸는 동심원의 구성을 해서 한편으로 부지 내부를 하나로 통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부에 공지를 넓게 두어 부지 외부와 여유롭게 관계를 맺으려 한다.
현재 1단계로 건축된 두 동의 건물이 저층부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부지 남쪽 부분에 서 있다. 두 건물은 부지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가로에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부채처럼 가로를 향해 넓어지는 형태로 대전엑스포 부지라는 도시와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 부지 바깥으로 향한 벽들은 도로의 모양을 따라 동쪽에 선 사옥에서는 직선이고 서쪽의 골프복합문화센터에서는 곡선이다.
밀도를 낮게 계획해 부지의 많은 부분을 도시의 오픈스페이스로 할애했을 뿐 아니라 세라믹 패널과 유리 같은 밝고 현대적인 외장재를 사용해 부력을 받고 있는 듯 경쾌한 외관을 만들어냈고 저층부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둘러 연면적 36,000㎡(10,900여 평)의 큰 볼륨을 가지고 있음에도 두 건물이 도시에 끼치는 부담은 작다. 사옥의 긴 벽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며 뒤로 물러나고 투명한 2층만 앞으로 돌출시켜 가로와 만나게 해 가로와 단절되지도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그 긴 벽이 그대로 높이 올라갔으면 가로를 걷는 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말았을 것이다. 두 건물을 묶어주는 저층부는 투명하게 유리로 둘러싸여 도시가로를 향해 내부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로를 걷는 이들의 배경이 되어줌으로써 전면의 가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동서의 두 건물은 그 기능만큼이나 조형도 크게 다르다. 골프복합문화센터 건물의 상층부는 변형된 모양의 원통형이다. 반복되는 스크린골프 공간을 일정한 모듈로 드러내는 대신 상하좌우로 연속되는 골프공 모양의 개구부를 내어 여러 기능이 복합된 건물임에도 통합성을 확보하고 건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사옥 건물은 산과도 같이 의젓하게 뒤로 물러서 따뜻한 남쪽 햇살을 흠뻑 받고 있다. 뒷산을 닮아 땅에서 자라난 기운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자신감과 기상을 드러낸다. 뒤의 광장에서 볼 때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는데, 그 모습을 전면 가로에서는 예상하기 힘들다. 중앙부는 하늘 높이 솟아 높은 목표를 행해 매진하는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높고 넓은 유리벽은 일정한 간격의 멀리언으로 분절되어 수직성을 강조하면서도 차분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둥그렇게 건물을 감싸는 투명하고 경쾌한 유리벽이 건물을 세련되면서도 힘차게 만들었다.
건축 속의 도시
골프존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공간에 들어왔다는 생각보다 다시 도시의 어느 부분으로 이동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건물이 골프라는 야외 운동을 건물 안에 담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음은 짐작했던 바이나 뜻밖이다. 설계자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으리라. 그것은 건물 안에 도시를 담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 그 꿈은 서로 다른 모습의 두 덩어리 건물을 저층부로 통합해 수직도시를 만듦으로써 절반이 실현된 상태다. 앞으로 2단계까지 완성되면 대전엑스포 부지라는 신도시 안에 작은 도시, 주거에서 상업, 업무, 그리고 문화에 이르는 모든 도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공간조직이 온전히 만들어질 것이다.
이 작은 도시의 중심은 중앙의 광장이다. 이 광장이 건물들로 둘러싸여 잘 정의되고 주변에서 시선과 동선이 접근되고 수렴되는 도시 광장의 위상과 요건을 잘 갖추기를 기대한다. 이 도시의 광장과 1단계의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사이, 반 층 내려간 곳에 둥근 공연장, 곧 아레나(arena)가 있다. 건물의 저층부 유리벽이 이 아레나를 부드럽게 감싸며 배경이 되어 준다. 건물의 출입구와 도시의 공공공간 사이에 이 아레나 같은 사이공간을 두면 분위기가 좋고 공간감이 풍부해진다. 이 아레나는 공연이 없을 때도 건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만나는 사회적 공간이 되어 주리라.
아레나를 거쳐 천장이 낮은 지하 출입구를 통해 건물로 들어가 보자. 건물은 유리벽을 투명한 커튼처럼 드리워 내부공간을 건물 밖으로 시원하게 열었고 아트리움을 두어 건물 안에서도 개방성을 확보했다. 아트리움을 따라서 줄지어 선 독립된 기둥들이 도시가로의 풍경을 자아낸다. 건물이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주변으로 열리고 내부공간들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개방적이어야 한다. 도시의 공간적 속성은 공공성이고 그것은 개방성을 요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큰 곡률의 곡선으로 굽이쳐 도시의 흐름을 자아내려는 듯한 건물 외주부의 외부공간은 위로 반복된다. 그것은 두 동을 이어주는 4층의 옥상정원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옥상정원에서는 동서방향으로 흐르는 갑천과 그 너머로 둔산 신도시가 바라보인다. 뒷동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풍경이다. 이렇게 골프존 건물은 대전엑스포 부지에 조성된 제2의 산이다. 머지않아 이 산의 뒤쪽으로 중앙 광장과 그것을 둘러싸는 몇몇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다. 산의 중턱 같은 옥상정원에서 그것들이 함께 이루는 작은 도시의 모습을 그려본다.
한필원 필자는 한남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ATA_아시아건축연구실(ata.hannam.ac.kr)을 이끌고 있다. 중국 칭화대학 건축학원에서 연구했으며, 미국 뉴욕주립대학(버펄로)에서 방문교수로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일관되게 동아시아의 주택과 마을, 역사도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건축사로 1989년에서 1995년까지 성림건축과 공간건축에서 건축설계 실무를 했다. 실무 작업으로통영 한산도 문어포 문화ㆍ역사마을 가꾸기 사업, 한옥과 양옥을 결합한 주택인 화계헌 등이 있으며, 안성 죽산에서 국토환경디자인 시범사업 총괄계획가를 담당했다. 현재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조달청 설계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