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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외로운 아키비스트

2013-04-10


요즘 사진계에 아카이브(Archive) 전시가 한창이다. 작년 연초부터 사진전 '임응식 : 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을 시작으로 연말에는 '2012 서울사진축제'와 '대한제국 :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 : 1880-1989'까지 사진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진 행사와 기획전이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한편 사진가와 아마추어들이 참여해 특정 지역이나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도 활발하다. 하루 동안 서울을 기록하는 KT&G상상마당의 ‘원데이샷’, 신림동 재개발 지역을 기록한 꿈꽃팩토리의 ‘밤골마을 프로젝트’, 청주의 연초제조창을 기록한 ‘공터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나 자료들이 집합된 장소를 지칭하는 아카이브는 그동안 다분히 학술적인 의미로 사용됐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아카이브라는 용어와 개념은 대중에게 친숙해지고 생활 속에 침투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록성이 뛰어나며 대중에게 친숙한 매체인 사진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뚜렷하다. 이러한 현상과 변화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미술과 사진 분야에서 대표적인 아키비스트(Archivist)로 활동하는 김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과 이경민(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이 한자리에 모였다.

글│박지수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이경민(46)은 중앙대학교에서 ‘한국 근대 사진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로 있다. 그동안 사진 평론과 전시 및 출판 기획 등의 일을 해 왔으며, 한국 사진사 연구와 근대사진의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념사진전'(문예진흥원미술관, 1999), '유리판에 갇힌 물고기'(대안공간 풀, 2004), '오월의 사진첩'(광주시립미술관, 2008),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덕수궁미술관, 2011), '2012 서울사진축제'(서울시립미술관, 2012) 등의 사진전을 기획했으며, 계간 ‘사진비평’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이동석전시기획상과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 부문을 수상했으며, 책으로는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사진아카이브연구소, 2005), ‘경성, 사진에 박히다’(산책자, 2008), ‘제국의 렌즈’(산책자, 2010) 등을 펴냈다.

김달진(58)은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를 졸업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96)을 거쳐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을 지냈다. 1999년에는 한국신지식인(정보통신정책연구원)으로 선정됐고,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미술인의 날-미술문화공로상(한국미술협회)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바로 보는 한국의 현대미술’(도서출판 발언, 1995), ‘미술전시 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한길아트, 2005) 등이 있다. 현재 김달진미술연구소장,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장,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편집인이다.


고무적이었던 2012 서울사진축제

월간사진 : 요즘 사진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한 사진행사와 전시 등이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고, 아트아카이브에 관한 논의와 세미나도 활발합니다. 두 분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2012 서울사진축제부터 이야기해볼까요.

김달진: 일반인의 사적인 사진은 앨범이나 장롱 속에서 파묻혀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러한 사진들을 모아 미술관 벽에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활동이 곧 사회와 국가적인 활동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개인적인 기념사진도 모이면 사회와 역사를 살펴보는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어요. 이번 서울사진축제는 아카이브의 활용적인 측면이나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친근하게 느낀 지역행사였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월간사진 : 이경민 선생은 서울사진축제의 전시총감독을 맡으셨는데, 처음 구상은 무엇이었나요?

이경민 : 사진앨범에서 꺼낸 사진을 통해 한사람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사진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수집된다면 서울의 지역사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의 25개 자치구별로 옛날사진을 공모해 전시로 구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하지만 전시는 일회성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집된 자료들이 각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거듭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울사진축제를 계기로 각 지역마다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면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거대담론 중심의 역사기술에서 벗어나 개인의 일상사와 생활사를 바탕으로 근현대사를 재구성해 가는 과정에서 민간 기록물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김달진 : 최근 들어 사진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가 발족하고, ‘미술사와 미술아카이브’(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아트아카이브와 한국미술’(한국화랑협회) 등 아트아카이브 관련 세미나도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그리고 미술 전시에서 드로잉, 작업노트, 도록과 출판물 등의 아카이브를 하나의 섹션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늘었어요. 작년에 열린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한국의 단색화', '올해의 작가', 'SEMA 1970~80년대 한국미술' 등의 전시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유명한 이인성 화가의 경우는 대표작들이 이미 알려져 있기에 아카이브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학술적 가치를 높였다고 생각해요. 또 올해 미술잡지마다 신년호 특집기사로 디지털 아카이빙이나 미학적 관점에서의 아카이브 등을 다루고 있는 것도 눈에 띄더군요.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룰 만큼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사진과 미술의 아카이브 역사
이경민 :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생소한 용어였는데, 요즘은 유행처럼 아카이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아카이브에 관한 논의가 처음 제기된 것은 90년대 중반이에요. 인문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공공 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요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자료가 제대로 이관되지 않고 폐기되는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후 공공기록물관리법이 발의되고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아키비스트를 양성하는 학과와 교육프로그램 등이 대학과 대학원에 개설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정보통신부에서 역사와 관련되어 기관들이 보유한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을 구축했고요. 이러한 흐름과 견주어보면 시각예술에 대한 아카이브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월간사진 : 아카이브가 제기된 사회적인 맥락을 짚어주셨는데요, 예술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달진 : 국가 차원에서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을 아카이브하는 국립예술자료원이 생긴 지 불과 3년이 안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조차도 최근에야 아카이브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전문 아키비스트를 채용했을 정도로 예술분야의 아카이브는 뒤쳐져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미술의 해’였던 1995년에 미술문화정보센터를 설립하자는 논의가 움트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1999년에는 본격적인 미술아카이브의 첫 사례로 꼽히는 삼성미술관의 한국미술기록보존소(서울 송현동)가 개설되어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2005년 용인으로 이전되고 전문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운영이 부진해졌습니다. 2005년부터는 아르코미술관의 인사미술공간에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고, 이를 ‘인미공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자료화 하면서 미술계에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확산됐어요. 2008년에는 근현대디자인박물관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10년에는 국립예술자료원 등 아카이브를 담당하는 공공 또는 사설기관들이 생겨났습니다. 사진 쪽은 이경민 선생이 짚어주시죠.

이경민 : 제가 1993년부터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한국사진사연구소가 개설된 때가 1978년입니다. 독보적으로 한국 사진사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한 최인진 선생이 만든 연구소에서는 ‘사진사연구’라는 기관지를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영상의 해’였던 1998년에는 그동안 축적한 성과를 바탕으로 사진 도입 초기부터 현대까지의 1,500여점의 사진으로 구성된 '한국사진역사전'(예술의 전당)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중앙대에 설립된 디지털콘텐츠리소스센터(DCRC)에서 4년간 근대사진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2009년에는 한미사진미술관에 한국사진문화연구소가 개설되어 근현대 한국 사진사의 자료 수집과 함께 원로 사진가의 구술녹취작업을 진행해 그 결과를 자료집으로 엮어내고 있으며, 기관지인 ‘사진+문화’가 나오고 있어요. 그동안 사진사를 연구해오며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해 개인적으로 2004년부터 사진아카이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엔날레 왕국의 초라한 아카이브
김달진 : 저도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열었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만큼 자료에 가치를 부여하고 함께 나누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봐요. 아카이브의 학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의 연구가 선행되고, 세미나를 열어 함께 논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경민 : 동감합니다. 지금까지 사진 아카이브와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혼자서만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한 출판이나 전시를 통해 대중과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사실 아카이브 작업은 개인이나 작은 규모의 연구소에서 지속하기 힘듭니다. 수집에 드는 비용이 크고, 자료를 디지털화 하려면 고가의 장비와 많은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결국 아카이브는 근본적으로 국가사업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인식이 높지 않기 때문에 아카이브에 관련된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열악합니다.

김달진 : 우리나라는 ‘비엔날레 왕국’이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전시성 행사에만 예산이 집중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술 분야에 투입되는 전체 예산 중에서 아카이브에 관한 자료 구입에 해당되는 비중은 무척 적어요. 아카이브가 결국 공공의 자산이고 문화유산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정책적인 지원이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공립 미술관의 자료실만 해도 전시 큐레이터가 부수적인 업무 차원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어느 미술관은 자료실에 필요한 인원을 자원봉사자로 채우고 있죠.

이경민 : 그나마 국공립 미술관에서 전문인력을 두고 있어 고무적이지만 현대예술의 다양한 매체와 장르마다 전문화된 아키비스트가 더욱 필요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사진전문 학예사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은 사진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의 불행이기도 해요. 또한 매체의 특성에 맞게 관리할 수 있는 보관시설이 확충돼야 하고요. 특히 필름의 경우에는 제대로 보관되지 않으면 표면이 녹는 열화현상이 일어납니다. 일단 열화현상이 시작되면 연쇄반응을 일으켜 필름 전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요. 단순히 필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볼 수 있는 시각문화유산이 손실되는 겁니다. 특히 원로 작가들의 방대한 필름들은 개인이 관리와 보존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존시설을 갖춘 공공기관을 통해 관리 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심각합니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김달진 : 자료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종종 사설기관이라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실물 자료를 발견해도 공간이 부족하고 과학적인 보존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들여오지 못하는 실정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작년 7월에는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어요. 정기적으로 모여 연구발표를 하고, 아키비스트들의 목소리를 모으려고 합니다.

이경민 : 사진계든 미술계든 논의의 장을 마련해 국가적인 차원의 정책과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어요. 근본적인 인프라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향후에 업그레이드된 논의와 활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인프라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당장 없는 것을 만들어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고, 현재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자료실마다 아카이브 기능을 강화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10년 전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사진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있고, 사진전시를 공격적으로 늘려가고 있어요. 특히 서울역사박물관은 근현대 도시를 조망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김달진 : 각 기관마다 나름의 아카이브가 존재하는데,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처음 만들 때부터 특정 장르나 연대기를 부여해서 차별화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대안공간 루프에서는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아카이브를 운영해요. 또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본격적으로 당대의 현대작가의 전시 자료를 아카이브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과 공동체로 확산되는 아카이브
월간사진 : 최근 사진계에서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아카이브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KT&G상상마당의 주최로 서울의 하루를 기록하는 원데이샷과 재개발을 앞둔 신림동을 기록한 꿈꽃팩토리의 밤골마을 프로젝트가 그 사례로, ‘일상’과 ‘지역’에 주목하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경민 : 재개발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마을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요즘입니다. 기존의 개발논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지역마다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아카이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서 수집된 각종 문헌자료와 시각자료를 통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기 때문이지요. 마을처럼 작은 단위의 아카이브가 쌓이면 한 지역, 더 나아가 국가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김달진 : 특히 도큐먼트의 성격이 강한 사진은 마을의 변천과정을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높은 콘텐츠가 될 수 있어요.

이경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기록하는 아키비스트로 활동한다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사진 콘텐츠가 많아질 것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역의 주체로서 거듭나려는 일반인들의 실천이 지역 아카이브로 표출된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사진이 주목받는 것은 아카이브 활동을 하는데 편리하고 기능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원주와 인천 등에서도 사진을 활용한 지역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김달진 : 한국사회는 단기간에 급속한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과거를 쉽게 잊거나 지난 역사나 사건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숨 가쁘게 살아왔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사진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습도 예견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생활 속 아카이브 실천, 디지털 데이터의 재앙
이경민 : 사적인 사진이라도 특정한 시대가 담겨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공유되는 부분이 있어요. ‘옛날에 이랬지, 나도 이랬지’라고 공감하는 것이죠. 그 자체로 기억의 담지체인 사진은 시대와 장소를 공유했던 사람들에게 공동의 기억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적인 기록이 공적인 기록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개인 기록물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카이브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개인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권력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아카이브는 국민들에게 전파되는 과정에서 국가 이데올로기가 개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공식 역사와 공식 기억이 재구성됩니다. 이를 학습하는 우리는 공식 역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의 존재를 간과하기 쉽습니다. 이외에도 개인의 일상사와 생활사를 드러내는 개인 기록물은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한 민중의 삶을 복원시킨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 기록물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고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프로젝트 등을 통해 개인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아카이브를 실천할 수 있는지 샘플을 제시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인다면 국가적인 차원의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김달진 :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말씀대로 민간 차원에서 개인이 수집한 자료들이 제대로 활용된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예를 들어 국내의 모든 도서관은 국가에서 만든 코라스(KOLA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장자료의 정보가 수집되고, 각 도서관마다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술자료와 기록물들도 국가 차원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수집되고 표준화를 거쳐야 활용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표준화와 매뉴얼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경민: 디지털 데이터의 관리도 무척 고민스러운 문제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신문사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고 디지털 데이터 형태로 사진 기록물을 생산하고 있어요. 문제는 CD나 외장하드 등 디지털 테이터를 저장하는 매체의 수명입니다. 아날로그는 경험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느 기간까지 보존된다는 경험치가 있지만 디지털은 그렇지 못하죠. 하물며 5~6년도 안된 CD가 데이터가 잘 읽히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등 이대로 방치한다면 디지털 기록물들이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가히 기록의 재앙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따라서 공유저작물의 개념이 도입된 아카이브 센터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술시장만 봐도 디지털 방식으로 출력된 작품의 보존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나 표준도 없이 작품이 거래, 유통되고 있습니다. 만약 작품이 변질된다면 과연 작가와 갤러리 중 누구의 책임일까요? 디지털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고, 앞으로의 현실적인 대응방식을 찾는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경민 : 사진이 역사적 가치를 가지려면 메타데이터가 분명해야 합니다. 고증이 먼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진의 기록적 가치는 무의미해요. 사진이 워낙 자의적인 매체인데다 전공분야나 관심사 등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서관 자료와 달리 표준화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진 매체가 가진 특수성이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사진을 해석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출판이나 전시의 형태로 내놓은 것은 일종의 ‘맥락 짓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장의 사진이 텍스트라면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텍스트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제 나름의 ‘맥락 짓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활동을 계속해온 이유는 사진을 통해 근현대사를 재구성하는데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풍경사진 한장을 통해 근대사진에서 현대사진까지 풍경사진을 조망하고, 이 안에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현재를 더 잘 보기 위해 근대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달진 : 미술자료를 수집하면서 느낀 점은 자료가 오래 됐다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오래된 자료를 찾기보다는 자료마다 어떻게 가치 부여를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전시 티켓을 봐도 그렇죠. 단순하게 보면 미술관에 들어가는 입장권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당시의 유행한 디자인과 폰트, 작가의 대표작을 볼 수 있고, 입장료를 통해 물가 수준을 유추할 수 있어요. 티켓 하나에서 이처럼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자료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수집해 연대기로 살펴보면 사료의 가치가 생기죠. 처음에는 전혀 학술적 가치를 생각하지 못하고 수집했던 자료가 쌓여서 문득 역사적 의미를 형성하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새삼 자료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애정과 열성으로 수집된 자료들이 소수의 통치자나 연구자에게만 전유될 때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미술자료를 수집하면서 궁극적으로 아카이브는 필요한 사람에게 모두 제공되고 소통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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