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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나무인형에 중독된 목인박물관 관장 김의광

2011-10-05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는 제주에 사는 작가 한분과 함께 설록차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차를 마시고 주변에 한 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에 수없이 마당 가득 많은 옹기와 독 항아리를 200여개 정도를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그는 인사동 목인박물관 관장이 되어 나타났다.

인터뷰 | 김종근 미술평론가, 아트앤컬렉터 발행인



오랜만입니다. 가끔 뵈었지만 이렇게 시간 내서 뵙기란 처음이지요. 제주도에서 뵙고 서울의 명소로 떠오른 커피 프린스 1호점 산모퉁이 카페에서 뵙고, 이제는 회장에서 관장님으로. 요즈음 박물관은 어떠신지요? 재미있는 컬렉션이 많은데 그간의 근황과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동기 좀 말씀해주시지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표를 수집을 하는 등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던 1970년대 어느 날, 미 8군 외국인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 민속예술품인 반닫이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상당히 큰 문화적인 쇼크를 받았어요. 마침 제가 태평양에 근무하며 용기 패키지를 만드는 부서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그래서 출근해서 전날 이야기를 하니까 동료가 인사동, 청계천 6가 중앙시장 등을 소개 해줍디다. 그래서 당장 찾아가서 사서 모으기 시작 했지요. 그러다 이게 박물관이 되었어요.

보통 이런 물건은 상스럽다고 피하는데 상여에 쓰이는 목인들을 모으게 된 특별한 이유나 동기라도 있나요?

언젠가 월출산 차 밭에 갔을 때였어요. 상여가 나가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후 민속예술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처음엔 관심이 가는 민속 예술품부터 모으기 시작했지요. 아마 당시에 내 월급이 8만원이었는데 그때 반닫이가 8만원이었어요. 내가 서울 사람이라서 처음 산 것이 호롱불이었고 초등학교 때는 노리개도 산 기억이 있어요. 한 10년쯤 지났을까? 어느 시골 마을에 갔다가 인형 하나를 발견 했지요. 신당 인형처럼 보이는 것으로 매력적인 인형인데 그것이 목인 컬렉션의 시작이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미술 쪽에 일을 하신 것도 아니고, 일찍부터 그림과 골동을 좋아하셨다고 알려져 있는데 관장님 본인 소개 좀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은 후, 1975년 태평양㈜에 입사했지요. 1980년부터 설록차 사업을 맡아 했으며 태평양 장원㈜ 전무, 장원산업㈜ 회장 등을 거쳤어요. 그러다 2004년 녹차제품을 생산하는 장원산업의 회장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하고는 1950년대에 지어진 인사동의 양옥 건물을 마련해 서울 인사동에 목인박물관을 열게 되었지요.

부친은 이승만 대통령 재임기에 장관직을 수행했던 김일환씨로 알려져 있는데 컬렉션에 아버님의 영향이 있으신지요.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것을 물려받았는지도 모르지요. 한 때 ‘녹차’하면 떠올리는 설록차와 제주도의 녹차박물관 ‘오설록’을 만드는 일에 일조 했지요. 초등학생 시절 우표를 수집했던 추억이 있고요. 우리 민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아버지가 물려준 병풍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그 병풍은 나중에 이화여대박물관에 기증을 했지요. 그렇지만 당시에도 도자기나 서화는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어요. 인사동과 중앙시장 등을 다니며 민예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회사 일로 찾은 지방 출장지에서도 그곳 민속품을 챙겼어요. 그러다 목인의 아름다움에 눈뜬 1980년대 후반부터 목인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4년 전후에 200여개 정도를 한 번에 준비할 기회가 있어서 수집하게 되었지요. 처제와 사촌누나에게 목인을 사라고 했다가 결국 내가 사서 박물관을 한 것도 아마 일종의 운명이란 생각을 해요.



관장님 어떻게 하다 이런 목인을 모으게 되셨지요? 모으다 보면 어떤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소개 해주지요.

네팔에 가서 한 컨테이너의 나무 인형들을 산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목물들에 흙이 묻어 있다 해서 다시 돌려보내서 배로 다시 가져오는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득남 이전에 집사람한테 아들 낳는다는 장식용 은도끼 선물을 해주었어요. 그래서인지 아들 2명을 얻었습니다. 내가 반평생 모은 목인들을 혼자서 보고 즐기는 것보다 잊혀져가는 전통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다 해서 이 박물관을 만들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목인이 무엇이며 어떤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요.

목인(木人)이란 목우라고도 하는데 나무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관혼상제, 일상생활, 불교에 사용하던 것으로 당시의 생활풍습과 신앙, 문화 등을 알 수 있으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지요.

여러 종류의 인형들이 나라별로 정리가 되었는데 컬렉션 중에서 재미있고 흥미 있는 것을 소개해주신다면?

소장품 가운데 명품 목인으로 꼽는 것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살판> , 영화 「왕의 남자」의 광대처럼 줄타기를 하는 <어름> , 한 세트로 모인 <광대 가족> 등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붉은 <치우천왕> , 첩과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는 <본처 목인> , <호랑이를 탄 목인> , 재주부리는 <광대 목인> 까지, 박물관에 전시된 목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재미있어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연상하는 데엔 부족함이 없는 연꽃, 학, 닭, 기러기, 사당패는 물론 가슴을 드러낸 기생, 봉황 탄 어린이 등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들이 많아요.



유독 목인이 많은데 예전에 이 목인을 어디다 썼는지요?

크게 보면 마을 어귀에 세워졌던 장승, 절이나 신당 앞에 모셨던 동자상, 부처상 등도 전부 다 목인이지요. 특히 상여의 난간을 장식하는 꼭두는 현세의 기쁨과 슬픔, 죽은자에 대한 애도와 명복의 뜻을 담고 있지요. 예를 들면 여기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광대에는 망자(亡者)를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다정하게 손잡은 남자와 여자 꼭두는 전생에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것이고, 관복을 입은 선비의 모습은 벼슬길에 오른 것을 상징하지요.

대략 이런 것들은 연대가 어떻게 되나요, 조선시대 이후가 되겠지요?

대부분 조선시대 중기에서부터 근대까지 만들어진 것인데,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과 다른 형태를 지닌다는 점이 특이하지요. 목인에는 죽은자를 저승길까지 안전하게 호위해 주고자 하는 마음, 이승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저승에서의 삶을 기원하는 옛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이상한 골동품을 사들고 오거나 박물관을 만드실 때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요. 많은 컬렉터들이 공통적으로 부인 몰래 가격을 속이거나 사서 놓았다가 나중에 가져오는 등 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데 관장님은 어떠신지?

그래요. 결혼해서 내가 낡고 헌 고가구를 집으로 하나씩 갖고 들어올 때면, 아내는 집안 가득 쌓여만 가는 골동품 때문에 처음에는 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두 달 이상 고민하다 집사람과 외국 여행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은퇴 후에는 박물관을 하자’는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되었지요. 아마도 그곳의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 우리나라 민예품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의 탈, 중국 앤티크 가구, 티베트 및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 여러 지역의 조각품까지 모아 목인 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집사람이 도와줘서 고맙고, 집사람에게도 큰 낙이 되었어요. 박물관은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우리 부부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냥 박물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 전시장도 가지고 있지요?

네. 개관 기념전으로 열린 「전통으로부터의 사유展」에선 평소에 좋아하는 분들 송수남, 이왈종, 김병종, 김선두, 문봉선 등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선보였지요. 제가 현대미술도 좋아해요.


전부 몇 점정도 소장하고 계신지요, 그 많은 것을 모두 어디다 소장하지요?

목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국내외 것을 모으면 대략 8천여 점인데, 조선시대 후기부터 1960년대 사이에 국내에서 제작된 것이고, 해외 목인도 3천여 점 쯤 소장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공간이 작아 전시할 수 없어 여러 곳에 분산해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또 관계기관에 한마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해주시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무료 관람인데 약간 걱정이 되요. 정부에서 지원은 부족하고. 그런데 직원 월급 하나 정도 줄 정도로 운영되는데 일반인들이 입장료 내는 것을 아까워해요. 돈을 내고 보는 문화에 익숙해졌으면 해요. 그리고 미술관이나 공공문화기관은 문화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간판을 좀 더 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에 외국처럼 알려주면 좋겠고요. 공익요원들을 박물관에도 인력으로 도입,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기업이 문화에 투자하는 것을 좀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인드가 있었으면 좋겠고,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결국 애장품은 모을 때까지가 우리 것이지, 박물관에 모인 후에는 모두가 여러분의 것이죠. 30여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우리 식구들이 이제 밝은 빛을 받으니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즐기는 열린 박물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국내 목인을 비롯한 많은 목인들을 소장하고 있는 목인박물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목인 전문 박물관이군요. 아마도 독일이나 외국에도 이런 것은 드물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 없어요. 우리가 규모는 작지만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갤러리, 지하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어 아기자기 합니다. 그리고 관람 후에는 멋지게 꾸며진 옥상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소장품들을 통해서는 각 시대의 생활상과 의식, 문화, 복식 등을 이해할 수 있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좋은 학습장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큰 전시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있으신지요,

네, 있어요. 우선 전시로는 중국 가면 전시 등을 생각중이고, 이후 여름경에는 올해가 소의 해라 소와 말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소도 웃고 말도 웃다’ 뭐 이런 것으로 한번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알차고 규모를 키워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밝히기에는 아직 좀 이릅니다. 후에 알려드리지요. 지금은 산모퉁이 카페 부암점에 이왈종 선생의 뜻이 담긴 작품 하나 걸어 놓는 것이 소박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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