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24
여성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널리 쓰이던 ‘섹시’라는 단어가 최근 남성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자연스럽게 남성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쳐 ‘섹시맨즈룩’이 브랜드의 지향점이 되고 있다.
취재 │ 배병관 기자 bkpae@fashionbiz.co.kr
올해 남성복 시장은 ‘섹시룩’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S라인’이라는 키워드가 여성의 섹시미를 대변하며 패션업계에 적지않은 영향을 준데 이어 이제 그 바람이 자연스럽게 남성 마켓에 불면서 ‘섹시맨즈룩’은 남성복 브랜드의 지향점이 되고 있다. 남성복 꽃무늬 상품의 대유행과 수트의 슬림화는 이를 반증하는 좋은 사례다.
세계 최대의 명품브랜드 소유기업인 LVMH 그룹은 내년 S/S시즌 「루이비통」의 남성 트렌드를 ‘여성화된 남성’으로 규정하고 꽃무늬를 활용한 아이템들을 제안했다. 여기에 꽃무늬와 자수를 활용해 토털룩을 선보인 「폴스미스」 「폴&조」와 타이트한 피팅감을 연출한 「디올옴므」 「이브생로랑」으로 인해 유럽 시장은 한동안 섹시한 남성 컬렉션이 강세를 띌 전망이다. 국내 남성복 시장에서도 섹시미를 강조하는 흐름이 내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남녀 토털화를 지향하며 남성 캐릭터라는 수식어를 부정한 「지오지아」와 섹시 글램룩을 지향하며 최근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고 있는 「워모」를 필두로 내년 시즌 런칭 예정인 「엘르옴므」 「다반」 「맨즈마루」 등이 섹시미를 직•간접적으로 어필할 전망이다. 또한 트렌드에 민감한 셔츠업계도 섹시맨즈룩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매머드 규모로 성장한 「에스티코」와 「더셔츠스튜디오」가 섹시코드를 성공적으로 풀어내면서 셔츠 매스밸류 시장에서 공공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기에 신규브랜드 「닷엠」이 세련되고 은은한 남성미를 강조하면서 시장내 안정적인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오지아」 남성 캐릭터 탈피
올 초부터 브랜드 밸류업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은 신성통상(대표 허무영)의 「지오지아」는 궁극적인 목표를 남녀 토털화를 통한 남성 캐릭터 탈피로 정했다. 「지오지아」는 그 동안 코스메틱 「지르」와 이탈리아 캐릭터 「데이비드마이어」 라인에 이어 ‘앤지 바이 정윤기’에 이르는 라인 익스텐션 등을 선보였다. 이는 남성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으로 업계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고 최근 강남역 플래그십숍에 ‘앤지 바이 지나’ 라는 여성 라인을 출시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회사는 “지나킴 라인을 통해 그 동안 선보였던 남성성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여성에게 어필하려는 남성의 욕구를 자극함과 동시에 여성 고객을 흡수할 수 있어 효율적 브랜드경영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앞으로 남성라인과 함께 여성라인이 융화된 브랜드로 발전된 브랜드상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오지아」 사업부의 방침은 기존 복종간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최근의 움직임에 대한 선도적인 역할로 풀이된다. 사업부측은 “지난 10여년간 남성 캐릭터라는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 중 하나로서 새로운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붐처럼 번지는 섹시코드를 남성에 국한하지 않고 남녀 토털로 선보일 예정이다. 상품구성을 위해 대형매장 확보는 물론 점진적인 브랜드 볼륨화를 통해 1천억원대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라고 피력했다.
섹시글램룩 「워모」 판매율 78%
지난 2003년 이후 매출이 성장세로 돌아선 크레송(대표 신용관)의 캐릭터 「워모」는 정장 비중을 축소하고 캐주얼을 확대하고 있다. 매년 20~25%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상품 물량도 20% 가까이 증가되고 있는 것. 올해는 당기 시즌 80% 이상의 상품판매율을 보이며 목표 매출인 3백억원에 근접해 가고 있다.
이 같은 판매신장에 대해 상품기획 총괄을 맡고 있는 최아미 이사는 “브랜드를 젊은 감각의 캐릭터 캐주얼로 리뉴얼해 가는 작업을 한지 3~4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은 브랜드 상품을 단순히 젊게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섹시글램룩’이라는 명확한 브랜드 컨셉을 갖고 진행하고 있다. 기존 30~40대 고객층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시해 결과적으로 넓은 수요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섹시글램룩(Sexy glam look)은 지난 1980년대 영국에서 성행했던 트렌드로 아이비(Ivy)에 현대적이고 캐주얼한 느낌을 강조한 프레피룩(Preppy look)과는 차별된다. 프레피룩은 단순한 미소년상을 그려낸다면 섹시글램룩은 미소년보다 강한 남성상을 표현해 이성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는 또 다른 트렌드이다. 「워모」는 이 섹시글램룩을 여성스러운 실루엣과 블랙 퍼플 레드 등 강렬한 컬러로 표현해 로맨틱 섹시룩을 완성해고 있다.
「마에스트로」 광고에 여성 등장
LG패션(대표 금병주)은 지난 9월부터 신사복 「마에스트로」의 TV광고에 영화배우 수애를 등장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광고로 그 동안 ‘박신양의 「마에스트로」’라는 닉네임을 떨쳐버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마에스트로」상품을 착용했을 때 남성의 뒷모습에서 나타나는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바디 실루엣을 여배우 수애와 매치시켜 남성성을 더욱 강조했다는 의견이다.
이 회사는 이 광고가 주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호주 출신의 여성 촬영 감독 수잔 스티트(Susan Stitt)와 함께 작업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 업체는 지난 97년에도 당시 주가를 올리던 섹시모델 신디 크로포드와 광고 촬영을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브랜드 총괄을 맡고 있는 조원준 상무는 “남성복 시장이 소비자 중심의 감성 조닝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마에스트로」는 남자의 몸을 가장 잘 표현한 옷으로 브랜드를 규정짓고 있으나, 이는 시대적 요구와 급변하는 트렌드에 따라 각자의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최근 선보인 광고는 트렌드에 따라 남성의 실루엣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격식있고 기품있는 옷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섹시미를 추가한 사례이다”라고 피력했다.
「엘르옴므」 ‘더욱 가늘고 길~게’
남성미와 섹시룩을 지향하는 남성복의 추세는 내년 신규 런칭 브랜드에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지이크」를 정상권으로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김종훈 상무가 새로운 캐릭터 캐주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씨니에스컴퍼니(대표 김명호)에서 선보일 「엘르옴므」는 젊고 섹시한 슬림라인을 무기로 런칭 막바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엘르옴므」는 올 초 프랑스어로 ‘그녀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엘르」의 남성복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지난달 18일 런칭쇼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 사업부는 패션쇼 외에 풀코디 바디 20개를 설치하고 이 브랜드만의 ‘중성적인’ 실루엣을 선보였다. 「엘르옴므」의 상품은 극도로 단순함을 표현하는 미니멀리즘을 블랙과 화이트 컬러로 심플하면서 세련되게 표현해 최근 남성복 트렌드를 강조했다는 평을 들었다.
또한 내년 런칭 후 가두점내 안착에 따라 백화점에도 진입한다는 유통정책에 맞게 버라이어티한 상품을 구성했다는 남성복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종훈 상무는 “최근 남성복에 번지고 있는 미니멀리즘을 「엘르옴므」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폭은 점점 슬림해지고 길이는 늘어나는 ‘가늘고 길게’ 현상은 섹슈얼리티와 맞물려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기 열풍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것과 남성 코스메틱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반」 액세서리로 완성도 높여
「엘르옴므」와 함께 내년 시즌 런칭을 기다리고 있는 에프에이비(대표 이시찬)의 「다반」도 섹시맨즈룩을 형성하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의견이다. ‘섹시한 남자 연예인’으로 항상 꼽히는 탤런트 정우성과 이정재가 부사장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의견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됐다.
지난달 초 「다반」 일본전시회를 다녀온 사업부는 브랜드 컨셉에 대한 설계를 마치고 샘플 중 일부를 공개했다. 이시찬 사장은 “「다반」이 갖고 있던 트렌디한 이미지와 남성 톱 연예인들이 부사장으로 내정돼있다는 점이 브랜드 컨셉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다 세밀해지고 트렌드를 의식하고 있는 남성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액세서리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는 후문이다. “트렌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다반」을 보여주고 싶다. 시간이 갈수록 여성화돼가고 있는 남성 고객의 수요를 잡기 위해 액세서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려 브랜드 완성도를 높일 방침이다. 섹시하고 세련된 남성상을 표현하기 위해 이성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액세서리 정도는 필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며 상품기획 방향을 밝혔다.
「맨즈마루」도 ‘섹시코드’ 지향
이밖에 내년 시즌 선보일 예신(대표 박상돈)의 「맨즈마루」와 다른미래(대표 박상돈)의 「노튼옴므」도 직·간접적으로 ‘섹시코드’를 표방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유니섹스 캐주얼인 기존 모브랜드와의 확실한 차별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두 회사측은 공감했다.
이후정 「맨즈마루」 기획부장은 “「마루」의 남성라인이 좋은 반응을 얻어 익스텐션 브랜드로 런칭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배경에는 기존 브랜드에서 차별화되는 남성코드를 소비자가 공감한 것이다. 두 브랜드의 확실한 차별화를 위해 「마루」는 좀더 영하게, 「맨즈마루」는 더욱 남성성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노튼옴므」의 총괄을 맡고 있는 장흥수 본부장도 “「노튼옴므」는 남성 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을 발견하고 준비하는 만큼 단순한 패밀리 브랜드 개념을 넘는 기획이 될 것이다. 기존 캐주얼에 만족하지 못한 남성 고객을 위해 「노튼」 남성라인에서보다 남성의 섹시미를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보다 차별된 기획을 위해 「노튼」과 「노튼옴므」의 독립사업부 체제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닷엠」 「WXM」 「쿠니」도 가세
남성복 시장의 섹시맨즈룩 현상은 셔츠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일어나고 있다. 단품 아이템이라는 단점과 리스크를 안고 있는 셔츠업계지만 그만큼 트렌드를 빨리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셔츠업계 관계자는 “셔츠라는 단품 아이템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가두점에서 이미 큰 자리를 차지하며 마켓셰어를 넓혀가고 있는 「에스티코」와 「더셔츠스튜디오」는 일찌감치 감성 트렌드를 수용하며 남성 고객층을 폭넓게 가져가고 있다. 김흥수 「에스티코」 사장은 “3~4년전만 해도 구매의사를 결정하는 남성 고객의 비중이 50%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70~80%가 여성 고객의 의사에 따라 판매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에스티코」는 이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남성 셔츠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고객 잡기에 열을 올렸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셔츠 브랜드도 마찬가지”라는 의견이다.
이는 올 하반기 런칭한 「닷엠」과 내년 런칭 예정인 「WXM」과 「쿠니」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닷엠」의 브랜드 총괄을 맡고 있는 조기춘 실장은 “여성 고객이 남성복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단지 여성의 입지가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 같은 현상은 여성이 의견이 제시할 때 남성 고객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소비자가 중성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