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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50년의 제임스 본드 스타일을 조명하다

2012-09-04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제임스 본드(James Bond)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에스코트하는 오프닝 영상은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007 시리즈의 50주년 및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가진 이 세리머니는 전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영국 문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007과 제임스 본드(James Bond) 시리즈의 50주년을 맞아 기념 전시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글, 사진 | 안소영 객원기자(syahn322@hotmail.com)

이 전시는 런던의 대표적인 복합 예술 센터인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에서 7월 6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리고 있다. 1962년에 개봉한 '살인번호(Dr.No)'에서부터 올해 개봉 예정인 최신작 '스카이폴(Sky Fall)'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아 온 제임스 본드의 스타일과 영화 전반을 둘러싼 각종 무기와 발명품, 무대 공간 및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보여주고 있다. 50여 년간 007 시리즈를 제작해 온 이안 프로덕션(EON Productions)에서는 유례없는 이번 전시를 위해 그동안 스크린 뒤에 숨겨져 있던 제작 과정과 정보를 모아둔 아카이브를 관람객들에게 공개했다. 스파이 어드벤처에 대한 큰 관심이 없더라도 익숙한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와 함께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다 보면 그 자리에 서서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한 편의 필름은 많은 아티스트와 기술자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들을 협업하여 완성해 내는 시각적인 결과물이다. 50년간 지속되어 온 007 시리즈는 다양한 후속 작품들에 대한 표본으로 첩보영화(Spy Film)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고, 많은 재능 있는 전문가들을 배출하였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제품 및 의상은 그동안 만들어져 온 것에 비하면 아주 일부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여 디자인 산업 전반에 창의적인 영감을 낳은 각종 제품들-공간과 배경, 가구, 자동차와 의상, 신발, 손목시계, 커프스 단추, 가죽 장식, 선글라스, 비행기, 보트, 오토바이, 의약품, 전자 제품과 각종 도구-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영국 문화의 50년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빠르게 스쳐 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제품이나 의상을 기억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13개관의 동선을 차례로 따르다 보면 하나의 장면을 위해 거쳐 가는 일련의 프로세스와 습작, 아이디어와 제작 과정들로부터 그 간의 열정과 도전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이 같은 소품들은 보는 이의 열망을 자극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더욱 빛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특수효과 면에서만 본다면 이보다 뛰어난 영화들은 많이 있다. '스타워즈(Star Wars)'나 '트랜스포머(Transformers)'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영화 제작 기법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으므로, 60~70년대에 제작된 007 영화들의 특수 기법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어렵다.

그러나 1962년 작 '살인번호' 이전의 다른 영화에서는 총이나 대포, 미사일 등의 무기들 이외에 별다른 특수무기가 등장한 적이 없었다. 제임스 본드가 사용하는 Walther PPK 외에도 자유자재로 변신 가능한 서류가방, 조립용 헬리콥터, 폭탄을 발사하는 담배, 레이저 빔이 발사되는 손목시계, 전기 충격기가 부착된 핸드폰 등등 일상적인 물건들에 기발한 비밀 무기를 장착하여 선보인 것은 007 시리즈가 처음이었으며, 이후 첩보 영화에 나타나는 특수 무기들은 이를 많이 모방하였다. 특히 2편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 등장한 서류 가방은 여러 가지 무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다용도 가방으로, 안에는 위력이 강한 소총이 들어 있으며 양 측면에는 금화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손잡이에는 단검이 있으며 본드 이외의 다른 사람이 열 경우 가스탄이 발사되는 설정으로 당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롤렉스, 오메가 등 최고급 손목시계에 숨겨진 원거리 폭탄 점화 장치, 추적 장치, 메시지 전송기 등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며, 아스톤 마틴 DB5, 페라리 F355, BMW 750iAL 등 이름 있는 명차들이 잠수 기능과 기관총, 연막탄, 스팅거 미사일, 이젝터 시트(Ejector Seat), 레이저 빔 등 수많은 무기를 장착한 본드카로 등장한다.

이번 전시의 게스트 큐레이터(Guest Curator)인 린디 헤밍(Lindy Hemming)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To succeed at this work one would be an observer of, and have an avid interest in human beings." 007 시리즈의 코스튬 디자이너로 활약해온 그녀는 사람들의 성향, 삶의 방식과 행동 패턴,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통해 얻은 영감은 패션과 텍스타일 뿐만 아니라 브랜딩에 있어서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모두 다른 요구에 부응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접근을 통해 그들의 숨겨진 니즈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고두고 널리 회자되는 성공적인 디자인은 그 자체로 트렌드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팩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는 제품이나 패션이 될 수도 있고,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역대 최고의 '본드걸(Bond Girl)'로 꼽히는 허니 라이더(Honey Ryder)가 흰색 비키니 차림으로 자메이카 해변에 나타나는 장면은 본드 시리즈에서 끊임없이 새로이 인용되고 재해석되는 기념비적 이미지 중 하나이다.

누구에게나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어릴 적부터 되고자 했던 이상향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길을 향해 도전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가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 많은 사람들 틈에서 경쟁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가끔은 현실 세계에서 이루기 어려운 꿈을 위해 또 다른 개체에 나의 모습을 투영하여 대리 만족과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은 무수히 많지만, 또한 이렇다 하고 정해진 길은 없다. 하지만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차곡차곡 퍼즐을 맞추듯 협업하고 노력해 나아가는 과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그 결과물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사회•문화적인 파급력을 만들어 낼 때에 비로소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007 시리즈 클래식 버전의 세련된 유머와 위트는 최신 영화들이 따르지 못하는 감동과 즐거움을 자아낸다. 이는 현대의 테크놀로지가 따를 수 없는 당대의 아이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관객들로 하여금 보다 영화를 가깝게 느끼고, 다음 시리즈에 등장할 다양한 디자인 콘셉트를 더욱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올해 10월 개봉을 앞둔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 Fall)'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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