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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영상 프레임에 담긴 과거, 사건 그리고 유물

2013-03-11


잊혀진 공산주의의 이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단체로 속삭이거나 브레히트의 오페라로 재해석해 호주의 아웃백에서 촬영한 영상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호주와 미국, 부다페스트 등 다양한 나라들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영상을 제작하는 작가 제시 존스의 작품은 통일되지 않은 제각기 다른 서사를 담고, 거대한 디아스포라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하는 듯하다.

글│진정윤 기자
기사 제공 │퍼블릭아트

그가 다루는 주제는 과거의 정치적 · 사회적 사건들의 유물로써, 영상매체로 재조립되었다는 일맥상통하는 양태를 지닌다. 제시 존스는 영화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에 초점을 맞춘 비디오, 영상작업을 글로벌 미술계에 선보이고 있는 작가로, 세계인의 뇌리 속에 자리한 공통적 서사, 과거 시대를 풍문 했던 대중문화나 사건들을 현대에 불러들여 이에 반대되는 맥락을 서로 합쳐 발생되는 지점을 포착하는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잊혀진 공산주의의 이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단체로 속삭이거나 브레히트의 오페라로 재해석해 호주의 아웃백에서 촬영한 영상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호주와 미국, 부다페스트 등 다양한 나라들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영상을 제작하는 작가 제시 존스의 작품은 통일되지 않은 제각기 다른 서사를 담고, 거대한 디아스포라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하는 듯하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과거의 정치적 · 사회적 사건들의 유물로써, 영상매체로 재조립되었다는 일맥상통하는 양태를 지닌다. 제시 존스는 영화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에 초점을 맞춘 비디오, 영상작업을 글로벌 미술계에 선보이고 있는 작가로, 세계인의 뇌리 속에 자리한 공통적 서사, 과거 시대를 풍문 했던 대중문화나 사건들을 현대에 불러들여 이에 반대되는 맥락을 서로 합쳐 발생되는 지점을 포착하는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제시 존스만의 작품세계의 지형이 체계적으로 형성되기 이전, 2006년에 선보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12 Angry Films'는 작가가 처음으로 제작한 프로젝트이자, 커미션을 받아 만들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더블린의 폐쇄된 선착장에 공동체를 위한 작품을 제작할 것을 의뢰받은 그는 자동차 극장을 만들고 1950년대의 미국과 대중오락 아이콘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작가가 단순히 아련한 추억의 장소를 현대에 재현해내는 것에 만족한 것은 아니다. 존스는 자동차 극장이라는 장소가 가진 기존의 형식과 맥락, 대중오락을 위해 조성되었던 공동체적인 공간은 고스란히 소환하되, 이에 상반되는 개념을 병치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를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 시켰다. 각자의 차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개인적인 공간임에 동시에 모두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공공적인 공간인 자동차 극장은 개인성과 대중성이 공존한다는 특이성으로 근현대 영화사의 관객성에 있어 흥미로운 순간을 제시한다. 제시 존스는 50년대 지극히 미국스러운 공간을 제작한 뒤, 6개월 동안 28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협업한 더블린의 노동자들이나 이민 노동자들의 현실, 사회적 정의, 계급에 대해 다룬 영상작업들과 50년대 영화관에서의 상영이 금지되고, 수차례 그 감독과 배우들이 핍박을 받는 등, 수모를 받았던 영화들을 상영했다. 불량식품처럼 입에 단 대중문화를 중압감 있는 정치적 고찰과 합쳤을 때 파생되는 쾌락 원리에 의거한 결과인 것일까. 의외인 점은 극도로 정치적이고 무거운 내용을 다루는 자동차 극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기간 동안 핫도그 차량이 찾아오는 등 단란한 축제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낡은 선착장의 자동차극장에서부터 출발한 작가의 세계는 이후 지속적으로 워크숍이라는 형식이나 협업의 형태로, 공동의 영상 프로젝트로서 관객들을 찾았다. 2008년 'The Spectre and the Sphere', 2009년 부다페스트에서 선보인 'The Whisper Choir of "the Communist Manifesto"'에서 쇠퇴한 공산주의 이념과 그 잔해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킴으로서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정치적 이념들의 흔적을 발굴해 지나간 과거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부각시켰다.

그 중 'Spectre and the Sphere'의 경우는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이른바 공산주의에 대한 B급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에 잊혔지만 영면하지 못하고 현대인의 삶의 곳곳에 파편처럼 흩뿌려져있는, 과거 공산주의가 남기고간 좌절된 꿈의 유물을 담고자 했다. 영상의 첫 시작은 B급 영화에서 흔히 괴물이나 외계인 같은 존재가 등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주로 사용되는 신비한 악기 테레민의 연주, 인터내셔널가의 음울한 선율로 막이 오른다. 이를 뒤따르는 장면은 벨기에 겐트(Ghent)에 위치한 사회주의자들의 성 브루이트(Vooruit)의 화려하고 기능적인 인테리어와, 웅장한 극장에서 유령이 귓전에서 속닥이는 것처럼 <공산주의 선언> 을 소곤거리는 속삭이는 합창단원들(Whisper Choir)이다. 진공을 통해 소리를 내는 악기 테레민을 연주하는 러시아의 유명 음악가이자 연주가인 리디아 카비나(Lydia Kavina)는 1919년에 악기를 발명한 테레민의 질녀다. 이 악기가 발명되었을 당시 레닌은 테레민을 당시 기술의 눈부신 진보를 상징하는 악기로 여겨, 인터내셔널가를 연주하기 위한 악기로 정한다고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로, 테레민의 대량생산계획이 좌절되었으며, 레닌의 꿈 또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 사연을 지닌 인터내셔널가를 발명가 테레민의 질녀가 연주함으로서 좌절된 레닌의 이상, 무너진 공산주의의 꿈과 그 역사가 작품의 러닝타임 동안 당대의 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공산주의 이념의 폐허 속에서 되살아난 허무한 꿈들의 심령현상처럼 말이다.

'The Spectre and the Sphere'가 마르크시즘의 망령을 일시적인 메아리로 되살려 현실에 울려 퍼지게 했다면 2012년 작인 'The selfish act of community'는 60년대의 사회적 공동체가 앓고 있던 갈등과 문제점들을 당대로 불러왔다.

인간중심 철학으로 상담과 심리치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칼 로저스(Carl Rogers)가 1968년 미국 내에서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대상으로 사회 동역학 상에서 ‘나’의 역할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진행했던 ‘참 만남 집단 상담(Encounter Group Therapy)’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다수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심리학자가 사회자가 되어 행해진 상담 장면들을 담았다. 이는 실제인물들이 사회에 의해 억눌린 자아나 불만, 개인적인 서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연극적이다. 작가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뿜어 나오는 ‘연극적’인 요소를 포착하고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브레히트식 대본으로 바꾼 퍼포먼스와 영상작업으로 재탄생시켰다. 60년대의 복식을 착용한 6명의 배우들이 재연하는 대화는 당시의 시대상이 오롯이 반영된 인종 문제와 성차별의식에 대한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품은 브레히트적 소외 효과를 통해 관객들이 배우들의 재연에 공감하는 것을 가로막고, 이들이 나눈 대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50년 전의 사회적 상황과 그보다 진보했다고 여기기 쉬운 당대의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북아일랜드 분리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후반,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작품에서 (흥미롭게도)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영국치하에서 식민 지배를 받고, 북의 강경파와 남의 온건파의 두 파로 나뉘는 비극의 근현대사로 얼룩진 아일랜드처럼 정치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복잡한 역사와 비극적 상황을 거친 나라에서 태어나 성장한 작가라면, 응당 그러한 배경을 십분 활용해 양분으로 삼은 작업을 통해 작품세계를 확장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존스가 지금까지 선보였던 영상작품들의 경우, 작품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형성된 국가적 정체성에대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뿐 더러,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만들어져 다양한 맥락을 담고 있기에 작가 본인의 아이덴티티조차도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이는 존스의 영상작업이 대부분 협업이나 워크숍 형식으로 제작되어 작가뿐 아니라 다채로운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지닌 인물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자아가 자연스럽게 흐려지게끔 의도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2월 한국에서의 전시를 앞두고 작가가 발표한 2013년 작 'The Other North'에서는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원천으로 삼았다. 특별히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된 영상은 한국과 아일랜드의 공유하는 정서적 지점, 두 나라 모두 근현대에 동일하게 타민족의 식민통치와 같은 민족 사이 이념의 차이로 분단의 고통을 겪었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를 염두에 두어 제작된 결과물은 앞서 언급한 'The Selfish Act of Community'처럼,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품의 원작으로 채택한 영상은 북아일랜드 분리운동으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발발하는 테러와 분쟁, 이로 인해 정서적,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은 서로 대치하는 종파의 사람들의 갈등해소를 담았는데, 작가는 이들의 대사를 모두 한국어로 번역, 지명이나 극중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영문 표기 그대로 두되 대화 중 한국인들이 정서상으로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의 가공을 거쳤다. 제시 존스는 이를 11명의 한국인 배우들에게 다큐멘터리 영상을 재연하게 하고 아일랜드와 한국이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감성을 한 화면 안에 교집합으로 중첩시켜 두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정신적 거리감을 좁히고자 했다.

제시 존스는 인종, 문화적 배경을 초월한 다양한 이들이 정치?사회적으로 당대의 현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과거의 사건들을 현대에 ‘재공연’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B급 영화에서 냉전시대의 향수를 느끼고, 버려진 구소련의 이념들을 소곤거림으로써 일시적 유령의 상태로 되살리거나, 20년대에 제작된 오페라를 통해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지적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관객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이러한 지점들만을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미시적인 시점에서 작가의 작업세계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점. 작가가 여태껏 선보인 작업세계 전체를 거시적으로 놓고 봤을 때 느껴지는 거대한 디아스포라. 이것이 바로 제시 존스의 작업세계의 본 모습이다. 작가는 작품상에 자신의 정체성을 좀처럼 내비치지 않고 반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조각들을 맞추어 완성한 퍼즐은 영락없이, 분단과 단절의 역사로 앓았던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이자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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